조현명 대감은 조선시대 영조 때의 영의정을 지낸 분이다. 조 정승은 일생 동안 퍽 검소하게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조 정승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조 정승이 슬픔을 이기려고 애쓰던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청지기가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감마님 지난번 마님의 장례비용에 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청지기는 부조 돈 들어온 것이 얼마이니 현재 얼마가 남았다고 말했다. "아니, 아내가 죽었는데 웬 부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 왔단 말인가?" "땅을 좀 사두면 노후를 편안히 지낼 수 있으실 겁니다" "내 노후를 걱정해 주어 고맙군.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네. 아이들을 부르게" 이리하여 세 아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너희들이 내 노후를 위해 남은 부조 돈으로 땅을 사자고 했느냐?" "예, 아버님께서도 재산을 마련하셔야 노후를 편히 지낼 수 있으십니다" 조 정승은 갑자기 밖으로 나가서 손에 회초리를 한 다발을 들고 들어오셨다. "자아, 맏이부터 이리 나와서 종아리를 걷어라" "이 고얀 녀석아! 어미 죽어 들어온 부조 돈으로 땅을 사겠다고? 송장 팔아서 한 재산 챙기겠다는 것이냐? 내가 늙으면 네가 나를 봉양할 것이지" 이렇게 차례로 청지기까지도 매를 맞았다. 그 뒤 남은 부조 돈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로 하였다. 그 후, 삼형제는 훌륭한 효자가 되었으며 벼슬자리에 있을 때도 청렴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물질적인 요구를 채우려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의 탐욕에는 끝이 없어 결국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이나 효령대군은 동생인 충령이 왕의 자리를 물려받을 것을 암시받고 스스로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유유자적 전국을 누비며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조선 5백년을 통틀어 으뜸가는 명재상이라 일컬음을 받는 황희는 재상으로 무려 20여년 이상을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새는 초가에 살면서 있는 것이라고는 누덕누덕 기운 이불과 서책이 전부였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일컫는 선인들의 "청렴"한 삶을 엿볼 수 있다. 너와 내가 서로 존경하고 존중 받는 삶!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삶! 서로 탐욕스럽지 않은 청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매진하여야겠다. 이 종 식대구반야월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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