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치원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아들이 등원해서 자유선택활동을 하는 장면과 또래끼리 사이좋게 교실생활에 충실한가를 확인지도하기 위해 교실 순회를 할 때였다.  평소에 인사를 잘 하고 의사표현도 분명하게 하며, 특히 질문을 잘 하던 '김희재(가명)'와 '박준혁(가명)'이가 서로 말 다툼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 말다툼을 하고 있네. 서로 아끼고 도우고 사랑하라고 했는데 좋은 말로 정답게 지내야지. 왜 말다툼을 하지?  김희재! 왜 다투는지 말해 볼 수 있겠니?  "박준혁이가 저를 부를 때 '재'라고 불렀어요.  우리 아빠가 지어준 고귀한 이름이 '김희재'인데 저 이름을 '재'라고 불렀잖아요. 저의 이름은 '김희재'이지 '재'가 아니어요. 그래서 기분이 나빴어요" "그랬구나. 너는 박준혁을 부를 때 어떻게 불렀니?" "박준혁이라 불렀어요" "박준혁아! 너가 김희재 이름을 부를 때 '김희재'의 말과 같이 '재'라고 불렀니?" "예. 그렇게 불렀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왜 그렇게 불렀니?"  "우리 아빠가 저 이름을 부를 때 '혁'이라고 부르시기에 저도 '재'라고 불렀어요. '재'라고 부르니 더욱 정다운 것 같았어요" "김희재의 말처럼 '김희재'란 이름은 김희재 아버님이 지어주신 고귀한 이름인데, 그 고귀한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은 말이다.  그리고 박준혁이가 '김희재'라 부르지 않고 '재'라고 부른 것은 더욱 정답게 부른 다고 그렇게 '재'라고 했으니 모두가 나쁜 뜻은 아닌 것 같네. 나쁜 뜻이 아니니 서로 이해하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할 수 있겠니?" "예!"   이름자가 두 자일 때 한자만 부르는 경우가 있다. 성과 항렬자는 이름의 공통된 부분이므로 일반적으로 생략하고 간편하게 다른 한자만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남들은 상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렇게 부르지는 않는다.   이름은 자와 호, 시호, 택호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자유스럽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자이다. 자는 관례를 마친 후에 지어준 이름이다. 호는 지식수준이 높거나 사회적 명망이 높은 인사들이 갖는 특별이름이고, 시호는 옛날 효자, 충신, 선생 등이 사후에 그 공적에 따라 임금으로부터 하사된 이름이다. 택호는 어른을 부를 때의 호칭이다. 택호가 반곡댁, 어련댁 등 일 때 그 집 어른을 '반곡어른', '어련어른' 등으로 호칭한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가 그 고귀성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정명(正名)과 수분(守分)은 옛 어른들이 강조해온 생활이념이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과 분수를 지켜 생활하라는 말씀은 물질적 풍요가 충만한 오늘의 사회에서도 불변가를 갖는 생활덕목이라 여겨진다. 자기 이름자는 물론 다른 사람의 이름자를 쓸 때는 초서나 약자로 쓰지 않고 정자로 바르게 쓰도록 하는 것은 정명과 관계된 것이며, '호사유피와 인사유명'이라는 말에서도 인생의 종국적 가치가 정명임을 암시하고 있어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지어준 고귀한 이름'이란 김희재의 효의 마음과 '재'라고 불러 정답게 지내려는 박준혁의 우정에서 다시금 시대적 교훈을 느껴본다. 요즈음 각종 매체에 지도자들의 귀중한 이름이 불편한 의미로 거명되고 있어서 정명이 아니라 사명된 것 같아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그런 분들은 유치원생들이 아버지가 지어준 고귀한 이름을 잘 지키려는 마음가짐에 대해 긍정적 이해를 하였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김 영 호교육학박사 (사)경주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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