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아침, 겨울 분황사를 찾는다. 내가 분황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원효의 흔적이 남아 있고, 경덕왕 때 눈먼 아이가 눈을 뜨게 해달라고 관음보살상 앞에서 부른 '도천수대비가' 향가의 창작 산실이기 때문이다매표소 입구를 지나 절터로 들어서니 아침 첫 햇살이 절 마당에 가득하다. 새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설레고 선덕여왕 3년에 쌓았다는 모전석탑도 새롭게 보인다. 문이 닫힌 보광전 앞에는 유명한 '삼룡변어정' 설화가 있는 '돌우물'이 보이고 느티나무 나목아래 '화정국사지비和靜國師之碑'라고 새겨진 단정하면서도 힘찬 추사 글씨가 보인다. 원효대사가 살면서 '화엄경소'를 저술했고, 그 아들 설총과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분황사, 옷 벗은 겨울나무들이 새해 첫 햇살을 받으며 나그네를 맞는다. 새해 첫 아침,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떠올린다. '나의 올해 소망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발길은 탑 왼쪽에 있는 범종각으로 향한다. 나의 소망은 단순하다. 양띠해니까 양털처럼 따뜻한 시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시 쓰는 일이다. 종각 가까이 가 보니 범종의 몸에 '도천수대비가' 향가가 새겨져 있다.
무릎을 고이며/두 손바닥을 모아/천수관음앞에/빌어 사뢰옵니다  즈믄(천)손의 즈믄(천개의)눈을/하나를 놓고 하나를 덜어/ 둘 없는 (감은, 먼) 내라/하나야 가만히 고쳐 주소서/아으, 내게 주신다면  놓으시되 쓸 자비야 (얼마나) 클꼬.
지금 읽어도 가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시다. 경덕왕 때 한기리에 사는 희명이라는 여인의 다섯 살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었다. 희명이 아이를 안고 분황사 왼쪽 전각, 북쪽 벽의 천수대비 앞(솔거가 그린)에 나아가,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기도하게 하였더니 아이가 눈을 떴다는 이야기다.어떻게 다섯 살 아이가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지극한 정성, 시공을 초월한 어머님 사랑의 절절함과, 대자대비하신 관음보살님의 자비를 찬송하는 축복의 향가가 아닌가. 생각해보면 희명의 마음이나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마음이나 똑 같은 마음이아닐까?  괴테가 말했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찬바람 속에서 그래도 온기가 느껴지는 을미년 첫 햇살을 받으며 겨울 분황사 뜰을 이리저리 거닐다보니, 보광전 어디쯤에선가 원효스님의 염불소리가 들리는듯하여 발걸음이 쉬이 떠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