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평가하는 잣대가 신용이다. 신용은 주로 약속 따위에 대해서 어김없이 확신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흔히 쓰는 말로 "그 사람은 신용이 없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대인 관계에 치명상을 입게 된다. 믿고 의지하는 신뢰성의 상실은 정말 자립할 수 없는 궁지의 지경에 다다르게 된다. 인간사회에 있어서 서로의 신뢰와 도움으로 위대한 행위가 형성되고,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진다. 자신을 가장 신뢰하는 자가 잘 속는다는 말도 있지만 먼저 자신을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군중을 지도하고 지배한다.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도 "사랑은 만인에게, 신뢰는 소수에게" 라는 말이 생기를 얻게 된다. 신용과 믿음은 거울의 유리 같은 것이어서, 일단 깨어지면 원래대로 하나로 되지는 아니한다. 요즘 우리사회는 믿음이 깨어진 혼탁한 생활 속에 믿을 구석이 없다는 말을 자주 쓰고, 듣는다. 정부의 행정이나, 정치가의 웅변이 모두를 거짓으로 판단되는 세상에, 유랑하고 있는 이방인처럼 살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믿음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한 개의 커다란 유동력으로서 저울에 달아 볼 수도 없고, 시험관에 넣어서 실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난한 자가 말하면 진실도 믿지 않지만, 부자와 악당이 말하면 거짓말이라도 믿는다는 옛말도 거짓이며, 모두가 모두를 못 믿는 처지에 와 있다. 사회학자 프롬은 그의 저서 '믿음의 기술'에서 "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 오직 그런 사람이라야만 미래의 자신을 믿을 수 있고, 또한 자신이 현재 바라고 있는 대로 느끼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은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 이라고 했다. 서로를 불신한다는 것은 피차의 불행이다. 눈에 보인다고 다 믿을 수 없으며, 건전한 판단은 지성의 승리이며, 믿음은 마음의 승리라 하겠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그의 기도문에서 "나에게 가장 고귀한 사랑의 믿음을 주소서. 죽음으로써 산다는 믿음, 짐으로써 이긴다는 믿음, 연약해 보이는 아름다움 속에 강한 힘이 감추어져 있다는 믿음, 해를 입고도 원수 갚기를 싫어하여 겪는 고통의 존엄한 가치에 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이런 신성한 믿음만이 세상의 불량한 불신을 믿을 수 있다고 신앙처럼 고백했다. 신용을 아끼는 용서와 이해가 세상의 불신을 깨우치는 도구로 삼은 것이다.
손 경 호논 설 위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