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람이라도 박일훈 관장님 이름을 잘 기억 못하시겠다구요? 그렇다면 저 유명한 '신라 천년의 미소', '얼굴무늬수막새'는 기억하시나요?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신라 여인의 얼굴, '얼굴무늬 수막새!' 와당 한 장, 단 하나뿐인 신라의 '얼굴무늬수막새'를 경주의 손으로 되돌려 세상에 빛을 보게 한 분이 바로 박일훈 관장님의 큰 공적이지요. 지난 1월 12일 국립 경주박물관에선 박일훈 전 국립경주박물관장님의 40주기를 맞아 조촐한 추모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어렵던 초창기 경주 박물관 시절, 천마총 발굴, 계림로 발굴, 호우총 발굴을 비롯하여 일본인 소장자로부터 '얼굴무늬 수막새'를 기증받은 숨은 이야기. 현 박물관이 있는 인왕동건물 신축 설계및 이전계획 등등을 하신 분, 35년간 문화재와 동고동락한 박일훈 관장의 탁월한 공적을 필자도(부끄럽지만) 그 추모식에 가서야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던 점은 두 가지 였습니다. 하나는, 천년의 미소, 그 '얼굴무늬 수막새'를 일본인 소장자 <全中敬信>씨로부터 경주박물관으로 수증하기까지의 박일훈관장님의 끈질긴 노력과 놀라운 결실이었고, 또 하나는, 박관장께서 무려 60여년간 박물관장으로서의 자신의 삶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25미터 길이의 긴 두루마리 일기장! 이었습니다. 일기장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보통 사람은 일년도 계속하기 힘든 일기를 평생을 써 왔다니! 그것도 두루마리에! 그 끈기와 정성은 가히 국보급이었고 본받을 만한 귀감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얼굴무늬수막새'가 어떻게 발굴되어 나타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박관장님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934년(일제시대) 경주 사정동 흥륜사에서 출토되어 당시 고물상인의 손에 들어가자 金일백원의 가격(그 당시 쌀40 가마니 가격)으로 경주 山口의원에 근무중이던 <全中敬信>씨가 구입 소장 하였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귀국할 때 가지고 가버려 그동안 경주에서 아주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런데 경주 한 농민의 손에 출토되어 일본인 고물상의 손에 들어가 다시 <全中敬信>씨의 손에 들어간 것을 안, 박 관장님은 '얼굴무늬수막새'의 귀중함을 아는 눈이 밝으신 분이셨다. 그래서 박관장께서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72년 경주 땅으로 '얼굴무늬수막새'가 돌아오게 됩니다. 그 당시 경주 박물관측에 '인면와' 수증식을 해준 <全中敬信>씨의 기록을 보면. "그동안 박일훈 관장님의 온정 넘치게 간절한 요청에 따라 인면와(人面瓦)를 만든 와공을 생각하면, 느껴지는바가 있어, 신라의 땅에 안식처를 제공하고자 이에 경주 박물관장에게 증정한다" 1972년 10월 14일. 全中敬信"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아름답고 소중한 천년의 미소, '얼굴무늬수막새!'.무명의 그  장인은 누구였을까요? 미소 짓는 여인은 와공의 아내였을까요? 사랑하던 연인의 얼굴이었을까요? 눈 밝은 우리 박일훈 관장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신라의 미소는, 일본 땅 어디에서 지금 울고 있을지 모르죠. 박일훈 관장님이시여, 장하십니다. 그 밝은 눈에 신의 축복 있으라! 그리운 당신께선 지금 어느 하늘 어느 천국에 가계시는지요!김 성 춘시인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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