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 부(富)를 누렸다는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는 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을 안겨준다. 이 가문에는 여섯 가지 '가훈'을 비롯해 '육연', '가거십훈' 등이 언제나 떠받들어져 왔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이 가문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부를 지키고 키웠으며, 사회 환원으로 마감한 전설적인 부자였다.   9대에 걸쳐 진사를 지낸 양반 집안이었지만 지탄의 대상에서는 언제나 자유로웠다. 정당하게만 부를 축적하고, 적절히 사회에 환원해 존경받았다. 마지막 부자 최 준은 막대한 돈을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썼고, 인재 양성을 위해 1947년 대구대학(1967년 청구대학과 통합해 영남대학교)을 설립해 모든 재산을 바쳤다.     오래전이지만, 이런 내용을 소상히 다룬 전진문 박사의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을 단숨에 읽게 된 건 오늘의 사회나 부자들이 그런 덕목들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엔 당대뿐 아니라 후손과 이웃에게까지 펼쳐지기를 꿈꾸는 '아름다운 비전'이 부각돼 있다.  그 첫 번째 덕목은 근검절약정신이었다. 인조 때 최진립이 일으킨 '청백리정신'을 후손들이 저버리지 않았다.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는 가훈은 그런 정신의 소산이다. 두 번째 덕목은 정당성과 도덕성을 담보로만 재산을 늘렸다는 점이다. 최국선(1631~82)에서 최 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흉년 때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 실천 덕목이 가훈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같은 선린정신은 부자들이 엄청난 수난을 당한 동학혁명 때도 완전히 예외의 자리에 놓이게 했다. 재지지주였지만 마름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도 각별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농민들의 아픔을 최소화하려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훈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가 말해주듯, 부를 크게 키울 수 있어도 적정 이윤만 도모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아 원성을 사지 않았다.  조선조에는 양반 신분(진사 이상) 유지가 곧 부의 유지 조건이기도 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란 가훈은 그래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학문으로 양반반열에 오르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데는 권력에 맛들이면 그 다툼에 휘말려 보복 당할 경우를 우려하는 지혜가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철저한 정경분리주의였던 셈이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가훈은 과객을 후하게 대접함으로써 집안 인심 홍보 효과는 물론 문화교류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가훈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나누고 베푸는 공동체적 노사관계 맺기로 불만 세력을 잠재우는 전략이기도 하지 않았을까.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자손 대대로 부가 지속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정치는 금력을 이용하고, 재력가는 금력으로 세력을 매수하려 했다. 이권을 얻어 더 많은 부를 얻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정경유착으로 이룬 부는 오래지 않아 정적들에 의해 파멸에 이르게 마련이었다.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부자가 되기 어렵지만 부를 지키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최 부잣집의 비결은 청렴한 선비정신과 투철한 국가관, 충절과 애민정신에 뿌리를 두는 데 있었다. 빈민 구제를 통한 재산의 사회 환원도 크게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가훈에 나타난 경영철학은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여전히, 어쩌면 더욱 소중한, 일깨움을 안겨준다. 성서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기록돼 있다. 부유해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지는 사회, 부익부 빈익빈을 넘어서는 정당성과 도덕성이 받들어지는 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한 것일까. 이 태 수시인■ 이태수(李太洙)시인 약력  ▲1947년 경북 의성 출생▲1974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꿈속의 사닥다리', '그의 집은 둥글다', '안동 시편', '내 마음의 풍란', '이슬방울 또는 얼음꽃', '회화나무 그늘', '침묵의 푸른 이랑', '침묵의 결' 등 12권과 육필시집 '유등 연지' 냄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등 수상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장 등 지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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