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위상은 단순히 국정의 책임자들에 있지 않다. 국가란 대다수 국민의 수준과 동일시되며, 사회란 국민 개개인의 품성과 인성이 반영된 풍토로 구성된다. 정부의 고위직에만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이 속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반적 부패가 관습으로 굳은 상태다. 이런 글이나 논조가 '뉘집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한 이런 사회현상이 아주 당연시 되며 쉽게 용납되는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의 작태다. 이런 도덕적 무감각은 높은 교육수준과도 별개로 불치병처럼 만연하다. 이 고질적인 병세는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세들에게 정신의 유전자로 대물림 된다. 앞 선 자의 눈밭 발자국처럼 예사로이 부패되는 썩은 정신의 소유자로 길들이는 위험한 사표다.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은 김영란법이 통과되어 극히 일부의 부정은 진정될지 모르나 문제는 다수의 국민들 의식수준이다. 국민성이란 개인의 성향들이 지향하는 사회성이다. 정직과 진실, 이 의롭고 떳떳한 낱말이 금기시되는 불행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최근 내가 속한 한 단체에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나 어떤 일들이 발생될 수 있다. 그런데 그 일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더 요상하다. 전단체장이던 사람으로부터 수십 명에게 새벽 1시에서 1시 30분 간 메일과 모바일 문자가 발송되었다. 무슨 권한의 횡포인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밤의 연락이란 직계가족의 긴급 상황에나 해당된다. 나의 휴대폰에서 문자를 보라는 수신음이 반복적으로 울렸다. 부득이 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메일을 확인하라고 했다. 무슨 급한 용무인지 메일을 열었다. 무려 8개의 첨부가 달린 글로 A4 20장이 넘는 분량이었다. 그야말로 헐∼∼∼. 이건 통신을 빙자한 일종의 폭력이었다. 도무지 기본의 예의조차 없는 행패에 무척 화가 났다. 내용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장황한 자기변호로 수치를 모르는 궤변에 불과했다. 단체의 명의로, 전국에 배포되는 서울의 두 군데 매체에 광고를 실었다. 단체의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 모금까지 한 사실을 2년 여 함구하다가, 느닷없이 타인의 시간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이었다. 대충 읽어도 욕이 절로 나왔다. 미리 외부의 발설을 염두에 두었는지 명예훼손죄의 법조항을 예시하며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씌우고 있었다. 해당관청인 모국장에 대한 야유와, 자신의 잘못을 문제 삼는 일부 회원들을 '허황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제막식까지 기재된 것을 보고 모금에 참여한 이의 당연한 문의전화는 '피곤한 말썽을 일으켜 정신적 결함을 의심하는 전화질'로, '모금액 환불은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며 '기부자가 건립을 저해하는 행위를 일삼아' 송금했다는 황망한 내용에 기가 막혔다. 나머지 기부자들의 모금액은 지금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자신의 계획이 무산된 것은 어느 의결기구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이 가장 큰 이유'임을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회원들의 무신경함에 있었다. 메일을 읽은 사람도 읽지 않은 사람도 그저 그러려니 별 반응이 없었다. 집단적 도덕적 불감증을 의심케 했다. 마침 내가 속한 분과의 인지상황과 관련된 일이어서 잠시 발표를 했다. 두어 사람의 반응은 엇갈렸다. 심지어 근거에 반하는 편을 들기도 했다. 어떤 일이 완벽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회원들 모르게 비밀리에 벌인 것이라면 반드시 잘잘못을 밝혀야했지만 수십 명의 회원들은 마치 동시에 무뇌상태의 병증처럼 침묵했다. 불의 앞에서의 침묵은 동조의 불의와 동의어다. 자신의 생각은 개념이다. 아무 생각이 없음을 무개념이라고 한다. 옳고 바름을 판단하는 생각이 없는 정신은 제 삶의 주인이 아니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국민성이다. 개인이 곧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