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찌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세상에 부귀영화가 풀에 꽃과 같고, 형성된 모든 것은 달라지게 마련이고, 소멸되기 마련인데…… " 앞의 구절은 윤선도의 오우가 중의 한 부분이고, 뒤 구절은 필자의 각주다. 최근 성완종 자살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오늘이라는 현실과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떠올려 본다. 과거 조선 왕조 500년 사에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는 제14대 선조와 16대 인조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조는 만고 충신 이순신을 간신들의 질투와 모함에 귀가 쏠려 귀향을 보냈고 제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손자로 선조와 인빈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났던 다섯째 아들 정원군의 맏아들이다. 광해군 때 권력을 잡은 대북파는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켰다. 권력에서 밀려나 있던 김유, 이귀, 이괄, 최명길 등 서인들은 이것을 구실로 능양군을 부추겨 1623년도 3월13일 새벽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 광해군을 쫓아내고 능양군을 조선 제16대 왕으로 즉위시켰다. 이것이 '인조반정'이다. 1627년(인조5년) 여진족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빌미로 3만 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  강화도로 피난했던 인조는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나라라는 '정묘화약'을 맺었지만 1636년 12월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형제의 관계를 다시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수정하자는 제의를 거절하자 청나라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 온 것이 '병자호란'이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래(三拜九叩頭禮)'를 하였으나 청의 황제는 머리를 땅에 박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서 수번을 반복하게 해서 인조의 이마에 유혈이 낭자 했던 이 치욕의 과거사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래서 조선은 결국 청나라의 신하라는 군신의 예를 맺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 부끄러운 역사는 258년이나 지속 되다가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1895년 승전국이 되자 그해 4월17일 일본의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청나라 전권대신 이홍장(李鴻章)이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청·일 강화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선은 청나라의 지배권에서 자유 독립국이 되었지만 1910년 한일 합방으로 36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 국가로 전략해 버렸다. 1945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대한민국의 광복은 그 기쁨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김일성의 남침야욕으로 1950년 6.25가 발발 동족상잔의 피 비린내 나는 3년간의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이후 60년이 넘는 이 시간 까지 남북이 155마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과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실상이란 세계70억이 넘는 인구 중에서 가장 헐벗고 굶주리고 가장 고립된 1인 독재 국가라는 사실은 전 세계인들이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종북 좌파 세력과 동조해서 조선 인민공화국, 북한을 찬양하고 대한민국 자유 민주 국가를 부정하고 붕괴 시켜 보려고 기를 쓰는 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나라가 또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한민국호의 미래는 이제 21세기에 걸맞게 완전히 새로운 판(시스템)을 짜야 한다. 안전 불감증, 안보 불감증, 그리고 부정과 비행의 관행이 정상인 것처럼 훈습된 한국 사회문화는 마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인간의 윤리성과 도덕성은 그 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주춧돌과 같은 것이다. 이를 바로 잡고 회복하기 위해 국가는 지금부터 대다수 국민들이 인간 삶의 가치를 파악하도록 새로운 판을 짜야한다'. 인간 삶의 가치는 윤리성과 도덕성이 그 잣대이다. 인간 삶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사는 국민들이 많을 때 그 나라는 부강하고 발전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황 경 환 동국대 경주캠퍼스 평생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