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쓰는 부모(父母)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부르는 말이고, 순수한 우리말은 '어버이'이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낳아 길러 주시고 공부시켜 주신 분이고 성인이 되도록 아낌없이 뒷바라지 해 주신 천상천하에 가장 귀하신 분이고, 모두가 존경하고 자랑하고 싶은 분이다. 아버지는 딸을 자랑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자랑할 만치 그 분들에게는 자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하고픈 존재이다. 부모는 평생을 두고 세상을 하직하는 날까지 자식을 한 몸으로 여기시고, 언제나 애지중지하신다. 중국 속담에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에 열을 주고, 아버지는 빛을 주신다."는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분이시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직장을 찾아 결혼을 하면 부모와 분가(分家)하여 새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태어나 자라던 고향을 잊지 못할 만큼 그 이상으로 부모를 그리워하고 그분들의 건강과 생활을 걱정하면서 자식도 어버이처럼 세월의 흐름에 동승하여 같이 부모가 되어간다. 필자의 나이도 노인층에 접어든다. 어느 날 이 책, 저 책 뒤지다 가슴으로 읽는 동시 한 편을 발견하고 여러 번 숙독한 적이 있었다. '손수레'라는 제목에도 매료되었지만, 짧으면서도 감미롭고, 다가오는 시 구절에 많은 정감을 갖게 되었다.  황씨 할아버지, 손수레를/힘겹게 끌고 가십니다./할머니는 뒤에서 밀고/저잣거리 뒷골목에 앉아/손수 기른 푸성귀를 다 파시고/기쁜 마음으로/집으로 돌아오십니다./가실 때는 푸성귀가 가득하더니/오실 때는/노을이 가득합니다./오실 때도 두 분이 /밀고, 끌고 ....../"가벼운 수레를 왜 미시나요?"/ 씨익 웃으시는 할머니/"행복의 무게를 아는감?"/할머니 눈빛이/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시골 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저잣거리에 앉아 나물이나 푸성귀 파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손바닥만한 좌판에 손수 뜯고, 기른 채소를 파는 할머니는 모두가 우리의 부모님이시다. 고향의 흙냄새 같은 푸근한 정이 느껴진다. 손수레에 싣고 시장에 가서 팔고 돌아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한 잊었던 부모님에 대한 뜨끈한 정이 느껴진다.  아침 일찍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저녁놀은 참 고왔을 것이다. 몇 푼의 돈이 어찌 행복의 무게를 알까마는 손수레에 담긴 저녁놀처럼 행복은 언제나 지식을 위하시는 어버이의 끌고, 미는 그 마음은 변함없으신 애정 그대로이다.손 경 호논설위원·교육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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