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지고 작약꽃이 한창이다 꽃이 진 자리마다 싱그런 초록위로 오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올해는 목월 탄생 100주년이 된다. 목월의 제자는 한국 문단에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선생님은 훌륭한 제자를 많이 기르셨다. 목월의 제자 사랑은 각별했다. 스승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74년도 봄, 선생님의 추천으로 제1회 '심상'지를 통해 내가 등단을 했을 때, 선생님은 서울 원효로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저녁을 먹고 헤어질 무렵 선생님께선 "김군, 시 많이 읽으래이" 하시면서 분홍 보자기에 싼 시집을 한 보따리 주셨다. (그 당시 어느 고마운 분이 가난한 시인들을 위해 출판해주신 귀한 시집들이었다) 못난 제자를 생각하며 주신 따뜻한 스승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선물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크고 따뜻한 분홍 보자기 선물을 잊지 못한다. 목월 시인은 생전에 꼭 연필로 시를 쓰셨다. 연필을 깎을 때 사각사각하는 그 소리가 좋고 연필은 지울 수가 있어서 참 좋다고 하셨다. 또한 선생님께선 퇴고를 엄청 많이 하셨다. (모든 시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선생님은 글자 하나, 마침표 하나와, 치열하게 싸우는 시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지금 '동리목월문학관'에 남아있는 선생님의 시 습작노트는 수백 권이 넘는다. 감동적이다. 어떤 습작 노트를 보면 시 한편 쓰는데 한권의 노트를 거의 다 소모하고 있다.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러해야 하리라. 선생님은 대구 계성중학 3학년 때 이미 동요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그때부터 "나는 꼭 시인이 될꺼야" 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며 시인을 꿈꾸며 사신 분이었다. 청소년기의 가진 꿈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선생님을 통해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선생님의 중학교 때 에피소드들 중에, 수업시간 수학책 밑에 '세계문학 전집'을 놓고 읽다가, 수학 선생님께 들켜 혼이 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시인이 되겠다고 수업시간에 문학책을 읽은 소년 목월, 그리고 서울서 내려오는 (얼굴도 모르는) 젊은 청록파 조지훈 시인을 위해 '박목월'이라고 쓴 깃대를 들고, 기차역으로 나가 조지훈과 처음 만나는 얘기도 지금은 한국문단의 전설이 되었다. 선생님께선 생전에 유명한 시집 '청록집'외에 다섯 권의 시집과, 한권의 유고 시집'크고 부드러운 손'을 내셨다. 평생에 사백편이 넘는 시를 남겼는데 놀라운 것은, 지금 읽어도 선생님의 시들은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 준다는 것이다. 아마, 목월의 인간애 넘치는 시편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목월의 아름다운 가정시편들을 읽은 사람이라면) 자살하는 사람도 지금처럼 많지 않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이 시대에 목월의 시가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생각해볼 만 하다 얼마 전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경주시립합창단'의 연주가 있었다. 선생님의 시로만 된 주옥같은 목월의 시를 기리는 가곡의 밤이었다. 선생님의 젊은 날 유명했던 사랑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 '이별의 노래'와 '떠나가는 배'도 함께 연주가 되었다. 싱그런 오월이 아쉽게 가고 있다. 목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경주에서도 그의 생가 모량리에서 선생님을 기리는 행사가 곧 있다. "김군, 화장실에 가서도 시를 생각 하거래이" 하시던 선생님 굵고 다정한 낮은 목소리가 생각나는 오월이다.김성춘 시인·동리목월문예창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