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고졸한 분위기의 고택이 하나 있다. 탑동, 옛 오릉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일명 식혜골길(탑동)에 있는 김호(金虎) 장군 옛집이다. 400백년 이상이나 된 오래 된 일자형의 안채가 남향해 있는 고택, 중요민속 문화재 34호, 마당 한쪽에는 천년 전 신라 우물이 있고 요즘도 시원한 샘물이 퐁,퐁, 솟아 나오고 있는 집, 1592년 임진왜란 때 '부산 첨사'를 를 지낸 의병장, 김호 장군의 옛집이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는, 이곳은 신라시대 무슨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곳으로, 옛 사랑채가 있었던 건물 터로 추정되는 곳에, 지금은 옥외 대청마루가 놓여 있어, 해질무렵 대청마루에 앉아서 맛보는 시원한 남산 바람, 그 소슬한 청량감은 장군의 고택만이 가진 매력이다. 경주가 낳은, 김호 장군, 그는 누구인가? 선조 3년 (1570년),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명한 최진립 장군등과 함께 경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분, 그 당시 언양에서 쳐 들어오는 왜적들을 막기 위해 진을 치고, 왜적들을 격파하신 훌륭한 분이시다. 그해 7월, 조정에서 '부산 첨사'로 제수 하였으나 '부산 첨사'에 부임도 하지 않으시고, 왜적들을 격파하는 일이 먼저라고, 왜적들과 끝까지 싸우다 혁혁한 공적을 남기시고, 장렬하게 순절 하신, 김호 장군! 우리 경주시민의 자랑스런 김호 장군이 아닌가. 경주는 김호 장군의 숭고하신 업적을 다시 기억하고, 장군의 애국 정신을 재조명 해야하지 않을까? 쓸쓸한 고가 한 채로, 그냥 잊혀져 가는 고택 한 채로 남게 해서는 안 된다. 중요 민속 문화재 34호 고택, 그 앞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집들도 정리해야 한다, 장군의 고택을 고택 답게 잘 가꾸어 장군의 정신을 본 받게 해야 한다. 우리는 경주가 자랑하는, 경주 최 부잣집, 최진립 장군의 임란 때 혁혁한 무공과 그 빛나는 최부잣집 가문의 전통을 잘 알고 있다. 그 아름다운 전통은 한국의 자랑이고 민족 정신의 자산이다. 이제 최진립 장군 못잖은, 김호 장군의 정신을 경주는 재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김호 장군 고택에는 지금, 14대 손 자부께서, 민박업과, 잔치국수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참기름도 치지 않는) 담백한 잔치국수의 맛이 고택과 잘 어울린다. 14대 손, 자부님의 손맛이 명품이다. 지조 높은 장군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있는 듯, 고집스럽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후손들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 돌릴텐가/구슬픈 심사 긴 노래에 붙인다/ 일찍 벼슬 길 무용함을 알았으니/ 참되고 바른 공부 닦을 수 있네/ (김호 장군의 유일한 시 '탁마') 나는 김호 장군의 구슬픈 심사가 담긴 시를 생각하며 고택의 '지남문(指南門)'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