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역할은 빛의 강약과 파장을 느끼어 뇌에 시각을 전달하는 감각기관이다. 우리말에 눈을 주제로 한 얘기들이 많다. 눈이 높다. 눈도 깜짝 안 한다. 눈이 뒤집히다. 눈이 삐다, 눈에 거슬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아니하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 등의 말이 있다. 옛 성인들의 말씀 가운데,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며,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만일 네 마음의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고 했다. 과연 저 물건이 참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내 눈이며, 눈은 귀보다 더 확실한 증인이다. 보통 애원하는 눈이 있고, 주장하는 눈이 있고, 기웃거리는 눈이 있으며, 눈은 밖으로 나가는 힘이 세고, 귀는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힘이 세다.  그래서 눈은 자기 자신을 신용하고, 귀는 남을 신용하는 것 같다. 눈은 마음의 창이요 얼굴의 진주라 한다. 눈의 기능을 3가지로 분류한다면, 육안과 심안과 영안(靈眼)이 있다. 심안(心眼)은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마음의 힘이나 작용을 가리킨다. 종교적 차원의 영안은 내세(來世)인 미래의 세상을 관조하는 눈이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나는 보기 위해서 태어났노라/ 보는 것은 나의 직분/ 탑 위에 올라 보면/ 세상은 내 마음에 찼어라/ 나는 멀리를 본다/ 또 가까이를 본다/ 달과 별을, 산과 새끼 사슴을/ 자연은 모두 신의 영원한 장식이어라/ 행복한 두 눈이여/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본 사물이 무엇이든/ 모두가 하나같이 아름답게 보이는구나" 참으로 인간의 시야는 백지 한 장만 가려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아주 미약한 것에 불과하다. 맹자 말씀에도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악을 전혀 덮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과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어둡다"고 하였다. 눈은 마음의 거울인 것 같다. 충청도 어느 지방의 동요에 "저 달은 하나라도/ 팔도를 보건마는/ 요 내 눈은 둘이라도/ 님 하나 밖에 못 보네" 라는 가사가 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눈은 정말 수고가 많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눈을 감게 하여 휴식을 하게 한다. 몸이 천냥이라면 눈은 구백냥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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