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경주는, 땅속에 수많은 역사의 미스터리가 숨쉬고 있는 비밀 창고 도시다. 얼마 전 나는 1500년 전에 묻힌 '신라의 젊은 남녀의 비밀'이란 무덤보도를 보고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 황남동 단독 주택 신축 허가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그 '돌무지 덧널무덤'을 찾았다. 귀족 여성과 성인 남성의 일부 인골이 겹쳐져 있는 묘한 그 무덤을. 무덤은 반월성과 대릉원과도 가깝고, 첨성대가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그날 현장에서 만난 '신라문화재연구소' 장유미 학예사의 친절한 고고학적 해설도 나의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경주에서 발굴되는 신라의 문화재는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정신의 흔적이다. 문화재의 현장에 가면, 나는 늘 내 나름대로의 몽상과 상상력을 떠 올린다. 이 매장 문화재에는 어떤 역사적 얘기가 숨어 있고, 또한 어떤 황홀한 문화의 충격을 내게 던져주는가? 나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되어보는 것이다. 황남동 이 무덤에는 30대 여인으로 추정되는 주피장자의 금제 귀고리와, 은제 장식허리띠와 말안장, 발걸이, 활 통 등등, 다수의 마구(馬具)류가 발굴되고, 여자의 인골에서는 대퇴골 조선 부분과, 종아리뼈 심줄(가자미 선) 흔적이 발견된 점 등으로 보아 그 당시 말을 타고 다닌 높은 신분의 여인으로 추정 하고 있다고, '신라문화재연구소' 발굴 팀장 김권일씨는 말했다. 왜 젊은 남녀가 한날 한시에 그 곳에 묻혔을까? 순장일까?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어떤 비극적 사랑일까? 순장이라면 30대 왕족의 여인으로 추정되는 그 여인은 누구일까? 왕비인가, 공주인가? 20대로 추정되는 그 젊은 남자는 누구인가? 여자의 연인인가? 스님인가? 여자를 따랐던 충성스런 무사인가? 그때는 어느 왕의 시대인가, 소지왕 때 사건인가? 왕궁에서는 그때 무슨 변고가 벌어졌는가? 신라 무덤 중에서도 아주 독특하게 발굴된 이 무덤은 우리에게 계속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황남동 남녀 순장 무덤 발굴조사 보고는 이제 끝났다. 그러나 궁금증은 끝이 없다. 무슨 절박한 사건으로 두 남녀가 한 무덤에 묻혔을까? 로미오와 줄리엩 같은 비극적 사랑인가? 유골을 분석중인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재현 교수팀의 정밀 감식결과가 나오면 사실은 명확해질 것인가? 나는 아직 그 비극적 사랑의 비밀에 눈을 못 떼고 있다.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시인 김성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