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은은하게 안으로부터 배어나오는 멋과 자연스러움에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그 아름다움은 우리를 부드럽고 너그럽게 끌어안아 주는가 하면, 그 안으로 자신도 모르게 깃들이게 하는 친화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하고 단순하며, 간결하면서도 품위와 고아함을 거느린다고나 할까.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이같이 사람을 위압하지 않고, 슬며시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곡선'과 빈 듯 비어 있지 않은 '여백'의 어우러짐, 가라앉거나 고이는 듯한 온화함, 절도 있는 억제(절제)와 말 없는 말(침묵) 등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자연, 우리 선조들이 만들었던 건축물들도 하나같이 이 같은 미덕들을 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흔히 만나는 산은 둥근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줄기들도 완만하게 겹쳐지고, 손을 잡거나 어깨를 겯듯이 어우러져 있다. 가파른 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이 그러하다. 하늘과 닿으며 만드는 곡선들이 부드럽고, 그 곡선들이 겹치면서 빚어내는 너그러움 또한 얼마나 정겨운가. 산에 올라보아도, 계곡을 낀 산자락이나 중턱에 사찰이 고즈넉하게 들어 앉아 있으며, 계곡의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게 마련이다. 어릴 적의 기억이지만, 야트막한 산에 올라 굽어보면 산의 형상을 닮은 초가집들이 편안하게 옹기종기 모여 엎드려 있은 것 같았고, 기와집 지붕들도 추녀가 버선코처럼 반달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었다. 뿐 아니라 봄과 여름의 풀들과 나무,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들, 가을이면 어김없이 산을 물들이는 단풍들은 역시 얼마나 정겨웠던가. 더구나 꽃이든 단풍이든 내세우기보다는 뭔가 안으로 다소곳하게 절제하고 있는 듯한 겸손 그 자체이면서 사람을 푸근하게 품어주는 느낌을 안겨주곤 했다. 선으로 치면 모두가 곡선이었다. 그 곡선 속에는 산을 그대로 닮은 무덤들이 여기저기 서로 끌어당기듯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면, 멧새들은 하늘에 이따금 포물선을 그리며 지저귀고, 하늘의 구름들도 나뭇가지에 매달리다가 스르르 미끄러지거나 느릿느릿 흘러가는 모습이었다. 산에 깃들이고 있는 산짐승들도 그리 무섭거나 위압적이기보다는 나무 뒤로 숨거나 종종걸음치곤 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여백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크게 강화하는 '말 없음의 말'로, 되레 말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더 아름답게 보완해주고, 의미망을 확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언어들이 그러해야 하듯이 여백이 절제와 안에서 배어나오는 '말 없는 말'과 미감의 공감대를 오히려 강화한다. 우리의 자연은 그렇게 부드럽고 넉넉하게 우리를 끌어안아주며, 그 위의 하늘 역시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옥빛이나 푸르른 옷자락을 펼치고 있다면 조금 과장된 말일까. 아무튼 우리의 조상들은 그런 그림 같은 산수 속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찍이 미술사학자 김원룡은 '한국미의 탐구'라는 저서를 통해 '부드러운 산수 속에 한국의 백성들이 살고, 이것이 바로 한국의 미의 세계요, 이 자연의 미가 바로 한국의 미'라는 요지의 예찬을 한 바 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자연에 인공적인 것이 끼어든다면 순수한 자연이라 할 수 없다. 다만 바로 그 자연을 닮고, 이윽고 하나가 되는 우리의 소박한 집들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사찰 정도는 '또 다른 자연' 쯤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바로 거기 동화되려 하지 않았을까. 올해 탄생 100년을 맞은 시인 박목월(1916~1978)은 경주 출신답게 신라 고도가 지니고 있는 정서를 밀도 높게 그려 보여 시에 있어서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그의 시에 포착되는 자연의 모습은 외관적으로 보이는 인간과 자연의 대상들이 아무런 균열 없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자연 속에는 인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아무런 갈등을 하지 않으며, 시간의 진행을 암시하는 자연 변화가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지도 않고, 생존을 위한 인간의 행보가 자연의 풍광에 이질적인 것으로 각인되지도 않는다. 어수선한 요즘 세상,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요즘 세태가 너무 삭막하고 가팔라 뜬금없는 것 같기도 한 이런 생각을 한참이나 해보았다. '세상 모르는 소리'쯤으로 여길 사람들도 없지 않을는지 모르겠으나, '세월호 참사' 이후 또 오래지 않아 '메르스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황폐한 마음자리에 놓을 이런 '한담'도 한 번쯤은 꺼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닮으려 하고 동화되려했던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과 너무 각박해진 지금의 우리를 차분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들여다보면서,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감싸주는 자연 가까이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어보려는 여유가 가장 절실해지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든다.시인 이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