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초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손돈호 작가의 전시가 라우갤러리 61회 초대전으로 10일부터 28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추상적 배경 구성을 통해 한국적 미감을 담아내고, 사실적 묘사를 넘어선 영혼과 욕망의 교량으로서 초현실적 공간을 표현한 그의 작품을 들여다 본다.■ 영혼, 그릇 속에 담기다  손돈호 작가의 작품들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작품의 주제와도 같은 그릇들이다.  임대식 아스토 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손돈호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극사실적으로 표현된 사물들이 서로 대치해 자신만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임대식 큐레이터는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다양한 그릇들의 모양과 질감에서 오는 친근함과 신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릇이 지니는 의미와 그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실제 보이는 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릇은 언제나 정확한 초점, 말하자면 가장 그릇처럼 보일 수 있는 지점에서 묘사되어 진다. 또한, 거기서 작가의 시선 역시 시작된다. 가장 원초적인 그릇의 원형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의 굳건한 의지인 것처럼"이라고 평론했다.  그런 까닭에 손돈호의 그릇들은 우리 삶이 지녀야 할 기준들, 예컨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준들의 집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집적된 형태는 다양한 모양을 통해 그릇들에 투사되어 영혼이 담겨질 견고한 틀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가장 깨끗하고 견고한 원형의 기준들에 영혼을 담고 그 영혼의 울림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정신의 정점이 곧 그가 그린 그릇이다.  투박한 질그릇이든, 찬란한 빛을 발하는 청자든, 작가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영혼이 담겨질 그릇이라는 의미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단지 그 형태와 색감에서 오는 다양성을 이용해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영혼이 정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작가에게 있어 그리는 행위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영혼을 거르고 또 거르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는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릇들의 조형성의 문제보다는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상징적인 의미 문제에 무게가 더 실린다는 것이다. 지겨우리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릇들은 더 이상 잘 묘사된 그릇이라고 하는 실질적인 의미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릇의 사이즈와 전혀 관계 없이 열린 주둥이와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손돈호의 그릇들은 점차적으로 화면 내에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공간을 확보하면서 관객들의 유체이탈을 유도한다.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된 현실을 너머 초현실적으로.    ■ 추상적 구성으로 찾아가는 한국적 미감 손돈호 작가의 고향은 경주 천북이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삶의 형성기 대부분을 보냈다. 천년고도 경주는 한국적 미감의 원형 중 한 축이 자라났고, 아직도 배어 있는 곳이다. 이런 환경은 예술가에겐 행운이다. 한국 고유의 정서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손돈호의 예술을 잉태하고 회화로 출산한 것은 경주다. 그의 그림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색채다. 현란하거나 강한 색감이 아님에도 인상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숙함이다. 오래 전부터 눈에 익은 듯 거부감이 없이 다가온다. 중간 톤 색채의 중후한 조화가 빚어내는 익숙함은 보슬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스며들어 마음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손돈호의 그림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을 끌어당긴다. 이것이 손돈호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이다.  왜 이런 느낌을 줄까. 작가가 오랜 공력으로 다져온 색채 운용이 이유겠지만, 또 다른 까닭이 있다. 그가 쓰는 색채에는 회색 톤이 살포시 깔려 있다. 채도는 낮지만 칙칙한 느낌이 없다. 무게감 있는 원색이기 때문이다. 빨강, 노랑, 파랑이 변주되는 색채들이다. 동양 전통 정서를 대변하는 오방색이다. 성격이 분명한 색채지만 부드럽게 가라앉혀 깊은 감성의 울림을 전달해주는 색감이다. 이런 색채로 그려내는 손돈호의 회화는 깊게 우러나오는 감성을 담아내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한국적 정서를 색감으로 보여주는 회화적 발언인 셈이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네 정서를 담아내겠다고 작심을 하고 의식적으로 이런 색채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냥 좋아서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주라는 전통 정서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삶 속으로 녹아들어 체질화되어버린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두 가지 방식이 섞여 있다. 사실적 기법과 추상적 구성이 그것이다. 사물의 실재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물이 화면 중앙에 놓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스치듯 보면 잘 그려진 정물화 같다는 인상에 머문다. 특별히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색채나 기발한 아이디어에 의한 시각적 효과가 없기에 그저 그런 그림이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소재는 조선 백자나 막사발, 신라나 가야의 토기 혹은 전통 옹기들이다. 작가가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보았던 것들로 우리 미감을 품고 있는 기물들이다. 그렇지만 이 기물들은 손돈호 회화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그가 그림에다 진정으로 담고자하는 것이 이런 정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돈호 회화가 잘 그려진 정물화의 수준을 넘어서는 대목이다.  그의 그림에서 눈길을 끄는 사실적 형태의 기물은 한국적 정서를 설명하는 물체일 뿐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한국적인 미감'을 실제로 느끼기는 어렵다. 단지 친숙하기 때문에 사랑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그의 그림에서 정작 주목해야하는 것은 배경이다. 추상적 구성을 가라앉은 오방색으로 다져 놓은 화면이다. 한국인의 미감을 정서적으로 풀어낸 부분이다. 이를 회화의 본분인 '느낌'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추상적 구성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장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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