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의 중추 역할을 해온 중진 원로작가 전광영씨의 초기작품부터 대형 설치작품까지 반세기 동안 펼쳐온 작품 세계를 총망라하는 회고전이 오는 20일 경주 힐튼호텔 우양미술관에서 열린다. 3년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전광영 작가의 개인 회고전은 우양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포함해 총 6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오랜 해외 활동 중에도 국내화단과의 조우를 그리워했다는 전 작가는, 60년대 후반 선보이기 시작한 추상표현주의 작업 중 미공개 되었던 작품 8점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작품 중 현존하지 않는 10여점을 재제작 하는 열정을 더해 작가의 시기별 작품을 골고루 선보일 수 있도록 했다. 2014년 이후 감각적인 색채의 신작과 고서한지로 포장된 유닛(unit)이 아닌 색점(dot)으로 구성된 새로운 시도의 작품 등 12여점의 국내 미공개 신작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작가는 아시아적 정체성과 서구적 근대성의 틈에서 방황했던 자전적인 갈등과 충돌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승화시켜왔다.1944년 생으로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목도했으며 도제식 미술교육을 피해 1969년 도미하여 당시 2차대전 이후 만연했던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움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분위기, 허무주의가 만연한 히피문화, 인종차별, 물질만능주의적 자본주의의 현실속에서 이방인으로 혼돈의 시기를 겪고 77년 다시 귀국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통해 서구적 모더니티의 '시각적 차용'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The 전광영' 이라 불릴 수 있는 작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시기를 탐하게 된다. 우양미술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따르면 초기작인 7-80년대 추상작업은 붓질을 통한 추상의 구현이 아닌 독특한 작업과정을 통해 나타난 결과물이다. 화학성분을 바르지 않은 캔버스에 테잎 또는 짧고 길쭉한 종이들을 흩뿌린 뒤에 혼합한 날염안료를 드리핑(dripping)한 후 이를 떼어내어 흔적을 남기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이후 등장하는 가늘고 길쭉한 유닛과 삼각형의 유닛의 집합을 추구하게 된 심미의식의 기저를 형성하게 해주었다. 작업을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추상표현주의적 작업을 과감히 접고 94년부터 '한지로 싸서 끈으로 동여맨 삼각조각'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아시아적 혹은 한국적인 정체성에 대한 모색이 반영된 것으로, 자연관과 인생관이 회화관과 일치하여야 함을 중요시하였던 문인화의 특성이 작가의 사유세계에 엿보인다.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주 드나들던 한약방에서 본 한지에 싸인 약재봉지들에 대한 섬광 같은 끌림에 주목하였다. 한지, 고서종이, 노끈, 향토적 색, 아련한 빛, 명상하듯 반복적인 행위 등을 통해 비로소 그간 추상작품에서는 좁히지 못한 근원적 노스텔지어를 해소하는 국면을 맞게 된다. 수많은 삼각 유닛(unit)들의 집합(aggregation)과 화면을 채우는 올오버(allover)적 제작방법은, 고정될 수 없는 관계지향적 속성을 가진 유기체 내부의 세포들을 연상시킨다. 이 또한 객관적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적 상대주의의 도가 사상과도 중첩되는 것은 우연일까. 이후 90-2000년대에 걸쳐 삼각 유닛을 재배치하고 구조화 하는 다양한 시도로, 평면회화도 부조조각도 아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구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극대화되는 시기로, 유닛을 집합하여 새로운 기하학적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집단화 시켜 그 사이 깊은 골을 형성하는 분열적 형태를 취한다. 또한 캔버스 자체를 변형시키거나 고서한지의 색채에서 나아가 오미자, 구기자, 치자, 쑥을 태운 재 등을 사용한 자연염색으로 다채로운 색에 대한 연구가 시도됐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평면적 부조 속에 심연의 웅덩이와 같은 공간감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나아가 3차원의 대형 입체 설치 작업들로 본격적인 '공간'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어 점차 4차원 이상의 시간성과 역사성까지 시각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해진다. 얼드리치 미술관(The Aldrich Contemporary Art Museum), 모리아트센터(Mori Arts Center) 등 해외 유수 미술기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독자적인 조형철학을 입증 받은 작가는 2010년 이후부터 삼각형 스티로폼을 싸온 한지의 색을 이국적으로 발전시켜, 초기 추상작업을 통해 추구하였던 빛과 색을 향한 자유로움을 다시금 실험한다. 꿈속을 떠다니듯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과 갈등의 알레고리를 'Dream', 'Star', 'Desire' 부제의 작품들을 통해 풀어냈다. 거시적 관점에서 작가는 아시아적 사유체계와 한국 전통적 정서를 비움과 해소의 화두를 통해 현대적 화풍으로 안착하는데 성공하였다. 끊임없이 노끈으로 개체를 묶어내는 제작방식을 보건대, 작가에게 작품은 잊혀져 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화폭 위에 붙들어 매어 두는 저장장치가 아닐까. 가볍지만 질긴 종이에 담긴 무거운 작가의식을 통하여 보편적 미의식 속에 담긴 특수성을 다시금 고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오는 20일 오후 5시 우양미술관에서 열리는 개막식의 특별 부대행사로 안상미 작곡가가 전광영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Specks of standstill' 등 '2016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장성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