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의 연작시 '이중섭'은 이중섭이 살던 곳을 따라가며 그의 고뇌와 그림을 시적(詩的) 형상화로 나타낸 작품이다. 무의미 시의 참신한 이미지가 이중섭의 그림과 일체감을 주고있다. 아래의 시들은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과 그림을 시로 변용한 이중섭 예술세계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씨암탉은 씨암탉/울지 않는다. 네잎 토끼풀 없고 / 바람만 분다 / 바람아 불어라. 서귀포의 / 바람아 / 봄 서귀포에서 이 세상의 /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월간문학 1974. 4월호 이 시는 이중섭이 부부를 상징하여 그린 '닭'과 '소'의 그림이 중심 소재로 등장한다. 서귀포는 이중섭 예술의 중심활동 무대가 된 현실적 지명으로서의 이미지와 아내와 '이별'한 곳으로서의 아픔을 지닌 곳이다. '네잎 토끼풀 없고'는 행복을 상실한 이중섭의 고뇌를 즉물화시킨 시적 표현으로 보인다. '제일 큰 쇠불알'은 이중섭의 그림 '소'연작의 정경묘사와 유사하며, 이것은 성적 충동을 강하게 나타낸 부분이기도 하다.  '부부'와 '씨암탉'과 '쇠불알'은 모두 성적인 문제와 관계가 깊은 사물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여성적 성격에서 탈피 하려고 하는 김춘수 시인이 가장 관심을 가진 소재들이다. 이 시의 이미지들은 무의식적인 충동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제재로 등장한 것은 '바람'이다. 바람을 중심으로 해서 씨암탉·토끼풀·서귀포·쇠불알 등이 모여지고 있다. 이러한 물상들은 바람을 통해서 비로소 이미지로 구체화되고, 시적 묘미를 지니게 된다. 또한 이 바람은 이중섭의 인간적 고뇌와 예술적 충동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봄은 가고/바람은 평양에서도 동경에서도/ 불어오지 않는다/바람은 울면서 지금/서귀포의 남쪽을 불고 있다/서귀포의 남쪽/아내가 두고 간 바다/게 한 마리 눈물 흘리며/마굿간에서 난 두 아들 달래고 있다. -한국문학 1975.8월호 이중섭의 예술(바람)은 아들과 아내와 인간적인 모든 것들과 이별한 고뇌의 땅 서귀포의 바다에서 그 진수를 나타낸다.  '바닷게'도 눈물 흘리고, 바람도 우는 서귀포의 남쪽, 그것은 김춘수가 항상 동경하던 인간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이며, 이중섭이 그의 그림'가족'에서 표현해 내었던 예술의 고향이다. '마굿깐에서 난 두 아들'을 달래는 그의 인간적 고뇌는 바람을 통해서 예술적 가치를 발휘한다. 바람아 불어라/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남쪽으로 쓸리는/끝없는 갈대밭과 강아지풀과/ 바람아 네가 있을 뿐/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 아내가 두고 간/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과/바람아 네가 있을 뿐/가도 가도 서귀포에는/바다가 없다바람아 불어라. -문학사상 1975. 4월호 이 시는 바람과 서귀포에는 바다가 없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이중섭은 아내의 흔적인 '부러진 두 팔과 멍든 발톱'을 인생의 상처와 그리움으로 받아들인다.  갈대밭과 강아지풀이 있는 곳을 지나 아내에게 달려가고 싶으나 펼쳐진 바다만을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의 모든 고뇌를 포용하는 '바다가 없다'에서 그 있음의 의미가 더 강조되고 있다. 거리를 더 확인하는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바람과 바다를 병치시킨 김춘수의 시는 서귀포에서 사심 없이 행한 이중섭의 예술 활동을 잘 집약시켜 주고 있다. 그것은 바람과 더불어 아이들이 천진스럽게 노는 풍경으로 이어진다.  다리가 짧은 아이는/울고 있다/ 아니면 웃고 있다 달 달 무슨 달 / 별 별 무슨 별 / 쇠불알은 너무 커서 바람은 서북쪽 / 삐딱하게 매달린다 / 한밤에 꿈이 하나 눈 뜨고 있다.  '다리가 짧은 아이'와 '달 달 무슨 달'의 시행(詩行)에서 이중섭이 그린 '바닷가의 아이들'과 '달과 까마귀'를 연상할 수 있다. '쇠불알은 너무 커서 / 바람은 서북쪽 / 삐딱하게 매달린다'의 풍경묘사는 '소'의 연작과'소와 게와 새'의 그림에서 온 소재들이다. 벌거벗은 아이들과 쇠불알은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본능적인 충동의 요소로서 강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이다. 시 '이중섭'은 대구·부산·통영·서귀포로 주거를 옮겨가며 불우한 생애를 그린 한 작가를 시로 읽는 만남의 즐거움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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