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말은 매관매직(賣官賣職)이 극에 달했다. 어찌보면 매관매직은 불법 취업(就業)인 셈이다. 구한말 권력자 흥선대원권(興宣大院君)은 경복궁 중수에 국고만으로 충당할 수 없자 재상 이하 모든 관원이 능력에 따라 연보하게 하고,백성들은 스스로 기부금을 납부하되 그 액수에 따라 벼슬과 상을 내리는 원납전(願納錢)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 원납전을 충당하는 과정에 매관매직이 횡행된 것은 권력 자체가 부정부패(不正腐敗)를 묵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매관매직에 관까지 적극 개입하자 백성들로부터 반발을 사 민란(民亂)이 일어나는 등 조선 폐망을 가속화시킨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기도 하다.  매천야록(梅泉野錄)과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 등은 구한말과 우리 근대사를 적날하게 언급한 책이다.  최근 영천시를 비롯 공직사회 승진을 두고 금품이 오고간 것을 '매관매직'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것은 인사비리(人事非理)며, 어제 오늘이 사건이 아니라 역사와 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매천야록 등에 언급된 일화를 보면 실소를 짓게 한다. 충청도 어느 고을에 강씨 성을 지닌 나이 든 과부가 있었다. 집은 부유한 편이었지만 자식이 없어 '복구'라는 개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원납전 징수에 동원된 관리(官吏)가 마을을 뒤지던 중 마침 '복구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복구(개)를 남자로 착각하여 강 씨 개를 '강복구'라는 이름으로 '감역(監役·공사감독)'에 임명하면서,원납전을 징수했다. 기가 막힌 과부가 개를 보고 "네가 비록 개이나 관직(官職)을 받았으니 어찌 함부로 할 수 있겠느냐?"며 개에 감투를 씌워 주었다 한다. 이때부터 충청도에서는 '구감역'(狗監役·개에게 내린 감역 벼슬)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강복구는 감역으로 공직에 입문했고, 인사 및 병역비리 두 가지 동시에 연루된 중요 범죄자로 해석하면 아주 재미있을 듯 하다.아울러 복구는 개 신분에서 감역(공직자)라는 '벼락감투'를 덮어 쓴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직사회의 인사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비단 이 문제는 우리네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중국은 삼한시대부터 영국, 프랑스 등 14C부터여서 우리나라 보다 '매관매직 문화'가 한참 더 앞섰다고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은 전쟁을 치는 동안 군자금(軍資金) 조달을 위해 매관매직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6·25 이후 군을 비롯 관가에서 승진(昇進)을 위해 거액을 상납한다는 사실이 공공연한 정설이자 교본으로 통용됐다. 더욱이 민선시대가 출범하면서 인사비리 사건은 사정기관의 연중행사로 정착됐다.  물론 관선시대에도 동질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지방권력시대를 맞으면서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사정기관 조사에서 알 수 있다. 20여년전에 만 해도 지방 주사(6급)가 사무관(5급)으로 승진할 때 협정요금은 1천만이었다는 것이 퇴직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최근 영천 관가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사오서칠(事五書七)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이 승진을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인데,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면밀히 따져 바야 할 것 같다. 지방공무원 사회가 인사철만 되면 난리법석을 친다.서로 헐뜯고,연줄을 달고,심지어 유력 대상자를 관계기관에 투서를 하는 등 공복(公僕)의 자세는 온데간데 없고, 개인입신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조 말 참봉직은 3만 냥이었다.이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관에서 민(民)에게 일방적으로 매긴 단가며, 이 직을 '벼락감투'라 했다. 그리고 강복구 역시 벼락감투를 쓴 것이다.이 감투비용은 국가 입고를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최근 공직사회 승진비용은 국가 재정이나 지방재정에 소요되지 않고 인사권자로 향하고 있다는 설이 팽배하다.그렇다면 이 돈은 특정인 '치부용' 또는 '비자금' 용도로 보관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 등 사정기관이 차제에 인사비리 등과 관련된 숙환(宿患)을 한치도 빈틈없이 도려낼 경우 이같은 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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