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아이들이 '배롱나무' 밑에서 행복스런 수다를 떤다. 꽃잎이 쭈굴쭈굴 주름이 많은 것도 성장하면서 이런 저런 일로 상처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닮았다. 백일동안 피고 또 피는 배롱나무 붉은 꽃송이가 뜨겁다. 내가 세 자매를 만난 것은 한여름 내내 뙤약볕에 얼굴을 내민 붉은 꽃송이가 빨갛게 달아오르다 열꽃 사그라지듯이 검은 반점이 생겼을 때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래 피어 있다고 해서 '백일홍(百日紅)'이라 부른다. 껍질을 손으로 조금만 긁어도 흔들리는 나무가 그 아이들을 닮았다.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고 말한 장폴리히터처럼 내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아이들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대청소를 하며 마음의 빛을 내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릴 때부터 수많은 꿈을 향한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개천(開川)에서 용(龍)도 나오고 했다. 그런데 그 나왔던 용도 다시 개천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에 그 아이들을 만났다. 한 부모 가정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매의 지금 처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환경이 열악하다. 요즘 말하는 수저론에 의하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이다. 취직,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三抛)' 세대론에 이어 금, 은, 동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수저론에 흙수저까지 등장하며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상을 젊은 신세대들이 자조적 표현으로 풍자화 하고 있다. 최상위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영어 유치원을 다니며, 온갖 사교육 다 받고 명문대 다니고, 어학연수를 다녀와 부모의 부를 이용하여 온갖 혜택을 모두 누린다고 한다.  엄마와 같이 사는 이 연년생 세 아이들은 과연 툭 치면 산산이 부서지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 난 것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나는 그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배롱나무아이들을 눈여겨보았다. 큰애는 주위가 산만하여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손이 빨갛도록 빨래를 하며 집안 청소와 설거지는 도맡아 하고 있었다. 성격이 유순하여 맏이로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하는 것이 여간 기특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을 살며 상상도 못할 일들을 그 아이는 하고 있었다. 둘째는 독서를 많이 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다. 꽃잎처럼 연약하며 섬세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몇 시간을 꼼짝 않고 학문을 정진하는 것이 옛날 같으면 개천에서 용이 될 아이다. 나는 이 아이가 상처받을까 생각하여 말 한마디 걸음걸이 하나도 조심스럽게 대했다. 막내는 배롱나무 꽃처럼 앙증맞고 귀여운 아이다. 내가 간지럼을 태우면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처럼 웃는다. 뿌리와 반쪽 줄기는 배롱나무, 또 다른 반쪽 줄기는 소나무로 자라는 200년이 된 배롱나무가 강원도 신흥사 경내에 문화재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즉 배롱나무가 소나무를 품고 자라고 있었다. 내가 만난 배롱나무 아이들도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 이 나무를 보며 어떠한 어려운 난관이 닥친다 하더라도, 어떠한 고통이 수반된다하더라도 이 나무처럼 서로가 더불어 살수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나무를 보며 하늘을 쳐다보니 배롱나무 주름진 꽃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고고한 자태를 만들어 나간다. 뿌리가 튼실해서 오랜 풍상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제 자리 지키는 배롱나무를 본다. 삶을 개척해나가는 배롱나무아이들의 꽃잎도 곱고 화사하게 피기를 배롱나무를 품고 있는 소나무에게 기도를 했다.  오늘도 배롱나무 꿈을 꾸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고 나오며 다짐을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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