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박이연극인 이수일 선생님 귀하' 주소도, 우편번호도 없이 그분 앞으로 정확히 배달된 편지 한 통! 오래 전 친구의 집에서 발견한 그 편지 한 통이 내게는 신비하고도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기억은 연극인 이수일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뒤따르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만큼 그는 경주에서 유명인사였다. 아직 6·25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7년, 이수일 선생은 경주에서 '에밀레극단'을 창단했다. 극단이라고는 전국에 단 둘뿐이던 그때, 에밀레극단이 무대에 올린 첫 작품은 유치진 선생의 '마의태자'였다.  천년을 내려온 왕조의 끄트머리에서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던 마의태자의 슬픔은, 바로 그 땅에서 신라의 유민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그리고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으로 다가갔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선생은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민중들의 슬픔과 상처를 드러내고 또 싸매었다. 밥이 전부일 정도로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으나 사람들에게 오히려 필요했던 건 위로와 용기 같은 '마음의 밥'이었을지 모른다.  이 선생은 연극인으로 경주라는 향토에서 산처럼 크고 튼튼한 마당을 다져온 분이었다. 어쩌면 당신의 큰 키만큼 우리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따뜻한 분이었다. 선생은 그 후로도 꺼져가는 연극의 맥을 지켜내느라 사재를 아끼지 않았으며, 에밀레극단이 경주시립극단의 모태가 되었다. 선생은 지난 2000년 연극인들에게 가장 권위 있다는 '동랑연극상'을 수상했고, 팔순이 넘은 지금도 경주 연극계의 고유명사나 다름없다. 연극의 고향 같은 경주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는 행사가 바로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7회째 접어든 이 페스티벌이 지난 15일부터 오는 3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고 있다. 광주시립극단의 뮤지컬 '전우치' 공연을 시작으로 순천, 경주, 대구, 목포, 전주시립극단 등 전국 9개 유명 국공립극단이 참가해 가족극, 악극,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형식의 연극들을 선보인다. 어쩌면 오늘날 연극이라는 장르는 마치 '흑백사진'처럼 아련한 추억과 기억의 상징이 되어버렸을지 모른다.  얼마 전 배 우 조진웅 씨가 한 인터뷰 자리에서 배고프게 연극무대에 서던 오래 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양분이 저에게는 가장 큰 이유이고, 가장 큰 버팀목이다. 대신 그 시절로 다시 가라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조진웅 씨뿐 아니라 황정민, 오달수, 이성민 등 우리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내로라는 배우들 역시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젊은 날의 연극무대를 떠올린다. 그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연극무대는 청춘의 열정이 이글거리는 용광로이거나, 자신을 채찍질하여 연기의 혼을 풀어낸 치열한 진보의 시간이면서,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첫 사랑의 현장 같았다. 이 모든 가치가 응축된 한 장의 흑백사진이 그들의 속주머니에 꼬깃꼬깃 들어있었다. 인생은 연극에 비유된다. 아마도 인생이 응축된 연극처럼 덧없음을 말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으로 등치된 연극 속에는 용기가 없어서 가지 못한 꿈같은 시간이 재현되고, 세상 이재에 눈이 멀어 곁눈조차 주지 못한 사랑의 길도 펼쳐진다. 탐욕스럽고, 포악하고, 비열한 세상논리에 이리저리 꼬이고 꼬여버린 인생사의 진실 한 줌도 연극이라는 무대에선 힘센 영웅의 근육처럼 불끈불끈 일어선다. 그러니 인생을 한낱 바람처럼 덧없는 무대로 여기지 말라 하고 꾸짖는 현장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한 편의 연극에서 우리는 마땅히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성찰하기도 하고, 인생이 가져다줄 수만 가지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하기도 한다. 하여 무대는 결코 가볍지도, 덧없지도 않다. 언제 우리가 이처럼 진지하고 무겁고 고단한 인생에 대해 들여다볼 여유를 가졌던가. 뜨거운 청춘의 시간을 돌아보고, 이제는 멈춰버린 꿈에 대해 아쉬워하며, 용기 없이 스러져버린 가치들에 대해 주목하는가.  우리는 언젠가 마을의 골목길을 나와 신작로에 들어서는 길머리에서 할머니가 사준 고무신을 벗어버리고 달리기에 편한 새 신으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멀리멀리 달려왔다. 어쩌면 향토에서 연극이라는 나무를 심고 키우고 지켜 온 이수일 선생의 인생은 우리 인생의 길머리에 벗어 놓고 온 고무신 한 짝을 찾아 보관하고 닦아 온 세월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아니 우리는 모두 그가 한심하다고 말하고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헌데 누가 한심하고 누가 어리석었을까?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대답을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연극에서 한번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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