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신문(新聞)의 잉크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잉크냄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시골 신작로(新作路) 면 소재지 버스정류장 매표소에 들러 신문을 찾아가면서 부터다. 매표소 직원은 매일 내가 아버지의 성함을 말하면 장부에 동그라미를 하고 신문을 주었다. 나의 신문읽기는 고바우영감과 왈순아지매 등 만화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체부가 집으로 배달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가 신문을 배달하면 아버님이 먼저 읽기를 기다리는데 2장 8면이었다. 그 당시 신문연재소설은 발행부수를 급증시킬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으며 그 문학인은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를 만큼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매일 신문 연재소설을 읽는 재미로 신문을 기다렸다. 나는 베스트셀러 연재소설이 실린 지면이 내손에 먼저 들어오는 날이면 희열을 느꼈다. 아버지와의 신문 쟁탈전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면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나의 마음을 살찌웠다. 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이면 그날 신문 5개 일간지는 정독을 하고 나가서 화제의 궁핍을 몰랐다. 스포츠신문은 서점 가판대의 인기를 독차지했으며 멋쟁이 청년들은 꼭 신문을 들고 다녔다. 책이 귀한 시절에 신문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 등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는 신문은 나에게 '활자중독증(活字中毒症)'을 만들었다. 아침에 어쩌다 현관에 신문이 없으면 신경질부터 났다. 하루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한 것처럼 허기가 지는 것 같아 신문 배급소로 전화를 하면 지국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총알같이 배달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특수한 신문 단골구독자가 되었다. 지금도 그 당시 스크랩한 기사를 펼쳐보며 웃음을 짓는다. 나에게의 신문은 세상을 보고 듣는 창구(窓口)이자 가치관(價値觀)을 정립하는 교재로 활용되면서 문학적인 다양성을 섭렵하는 기초지식을 주었다. 신문읽기가 습관화되면 두꺼운 책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광고까지 샅샅이 살피며 정신적인 소양을 쌓았다. 신문을 읽으면서 책을 가까이 했고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백일장에 상을 휩쓸었다. 그러다 지금은 수필가로 활동을 하며 여전히 신문을 옆에 끼고 산다. 경주시 본청 어느 부서를 가더라도 신문 진열대가 있다. 그 많은 종류의 신문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폐지로 버리는 것을 보았다. 매일 버려지는 신문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신문을 읽자. 좋은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취재기자를 만날 때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다. 칼럼과 사설의 지면은 다양한 인물들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비판적 사고와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울 수 있다. 활자중독증 환자의 비율이 높을수록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역량이 높아진다고 한다. 중국은 1993년부터 청소년 독서교육활동이 시작되고 2006년부터 정부차원의 전민독서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일본 역시 활자중독증 환자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독서율 최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책은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꿈꾸는 이상한 나라다. 국민의 수준이 좀 더 전문적인 인문소양이 갖추어졌을 때 세계 속에 한국의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신문에서 부터 길을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