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시 동호동은 이중섭이 정성을 쏟으며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곳이다. 그곳의 생활도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삶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그때의 이중섭 예술을 그의 그림'새와 나무'·'나무와 달과 하얀 새'를 소재로 형상화를 시도했다.  충무시 동호동 / 눈이 내린다 / 옛날에 옛날에 하고 아내는 마냥 / 입술이 젖는다 / 키 작은 아내의 넋은 / 키 작은 사철나무 어깨 위에 내린다 / 밤에도 운다 / 소리 내어 아내는 가고 / 충무시 동호동 / 눈이 내린다. -한국문학. 1975년 10월호  이 시는 "충무시 동호동 / 눈이 내린다"로부터 시작한다. 눈 내리는 겨울 정경은 아내와의 옛날을 회상하도록 한다. 아내가 가버린 세계는 눈이 내린 텅 빈 세계이다. 사철나무 어깨 위에 내리는 아내의 넋은 밤에 우는 한 마리 새와 같은 모습이다. 이중섭의 '새와 나무'· '나무와 달과 하얀 새'는 김춘수의 시를 통해 그 예술적 진가가 되살아난다.   이중섭은 충무·부산·대구·제주도로 주거를 옮겨가면서 그의 예술 편력을 계속한다. 김춘수 시인은 이러한 이중섭의 예술 활동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시적 형상화를 시도한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충무시 동호동은 대구 '동성로 꽃가게'로 이어진다. 대구의 동성로는 6·25전쟁 당시 피난 온 많은 예술가들이 만나서 예술 활동을 전개하던 문화의 거리이다. 동성로는 이중섭이 예술 활동에 정력을 쏟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내의 손바닥의 아득한 하늘 / 새가 한 마리 가고 있다 / 겨울이 가도 / 대구는 눈이 내리고 / 팔공산이 아마(亞麻) 빛으로 가라앉는다 / 동성로를 가면 꽃가게도 문을 닫고 / 아이들 사타구니 사이 / 두 개의 남근(男根) / 마주 보며 저희끼리 오들오들 떨고 있다. -한국문학. 1976년 1월호 대구에서의 이중섭 예술 활동은 '손과 새, 가족', '동자상' 등 여러 작품으로 나타난다. 그 그림에는 아내와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본능적 충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김춘수는 이러한 이중섭의 예술을 시로 변용한다. "아내의 손바닥의 아득한 하늘 / 새가 한 마리 가고 있다"는 시행은 '손과 새, 가족'에 나오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새로 형상화 되고 있다.  아마(亞麻)빛의 팔공산과 동성로의 꽃가게는 이중섭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거리요 자연이다. 눈으로 문을 닫은 꽃가게는 애틋한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가족을 묘사한 이중섭의 '동자상'의 연결에 이르러서 김춘수는 자신의 성적 콤플렉스를 짙게 노출시키고 있다. "아이들 사타구니 사이 / 두 개의 남근 / 마주 보며 저희 끼리 오들오들 떨고 / 있다"는 시행들은 김춘수의 시 동국(冬菊)에서 표현한 "미8군 후문 / 철조망은 대문자로 OFF LIMIT / 아이들의 구기자(拘杞子)빛 남근(男根)이 / 오들오들 떨고 있다"와 유사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김춘수의 시에 남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의 남성적 과시의 충동이며, 순수를 지향하는 그의 예술 역시 성적본능에서 온 것이다. 이중섭이 대상의 표현을 위해서는 어떠한 한계도 두지 않았듯이 김춘수의 성적본능도 매우 충격적인 이미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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