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중국은 우리와는 기본이 다르고 출발이 다르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과대평가하고 우리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늙은 중국과 젊은 중국이 아주 절묘하게 협력하여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그들의 미래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80년 중국 개혁개방, 우리는 그들과 필답(筆答)이 가능하다고 좋아했고 안심했고 또 자신만만해했습니다. 소통 가능의 기쁨을 느꼈지요. 그러나 그 단순기쁨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수 있을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중국, 중국인,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먼나라 이웃나라이고 먼나라 이웃나라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발표에 대한 중국정부의 반응은 거칠고 난폭하며 대국의 품위를 잃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내정간섭' 수준의 무례함에 모멸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중국은 또한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흘리고 있으며,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행여나 그들의 감정을 자극할까 긴장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는 과거 2000년 6월 우리가 저가(低價) 중국산 마늘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를 작동했을 때 중국이 한국의 휴대전화 등의 수입을 전면 금지 했었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친구(韓國朋友)'라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핵심이익 앞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타협도 없이 심지어는 막무가내 생떼를 쓴 중국을 보고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세의 한국이라 해도 과분하지 않을 것 같은 지금 이 시점에, 공자와 삼국지를 중국인보다 더 많이 읽었고 더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며 그들과의 비즈니스에 뛰어들고, 그들과 FTA의 거보(巨步)를 함께 하려고 하는 우리가 진정 중국을, 중국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새삼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등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이후 30여년, WTO에 가입한지 불과 10여 년 전 인데 한 세대 만에 중국은 세계적인 성장발전의 신화를 다시 썼다. G2의 위상을 갖춘 국가가 되었으며 대중화(大中華)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경제논리를 확실히 소화하여 받아들인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그들의 내면에 축적되어 면면히 이어온 특유의 시장경제 수용적인 DNA에 기인한 것이라 말하고 싶다. 한자를 배우기 전에 숫자를 먼저 배우고 '주판'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던 상인의 나라의 중국인들은 유전적으로 상업적 DNA를 타고 난 것이다. '비단장수 왕서방'은 바로 그들의 천성적인 상업성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인 것이다. 광활한 영토, 다민족(多民族), 한족과 이민족의 지배-피지배 관계 속에서의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끊임없는 충돌과 융합(融合) 등은 중국내 각지 특유의 상인 공동체인 상방(商邦)을 생성하게 하였다. 이들 지역 상방들의 상인정신요체는 나아가 신(新) 절강정신의 대표인 마윈(馬原)을 낳았고, 대륙의 실수·중국의 애플에서 세계의 샤오미(小米) 돌풍을 불러일으켰다. 'Make with Shenzhen(深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짝퉁 생산의 '산자이(山寨) 문화'에서 벗어나고 있는 심천은 오늘날 중국 벤처의 성지(聖地)로서 창업과 파괴적 혁신의 신(新) 광동상인 정신을 이어 가고 있으며, 중국의 Google 바이두(百度)의 CEO는 신(新) 진상(晉商)으로 추앙받으며 중국 젊은이들에게 중궈멍(中國夢)의 실현에 접속하게 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는 재신(財神)인 삼국지의 '관우'가 있고 바다의 죽음의 신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재신인 붉은 옷의 마주(馬祖)가 있다. 상성(商聖)이라 일컬어지는 범여와 백규(白圭) 등의 수많은 '중국의 워렌버핏' 이 있었다. 공자의 주유천하를 가능하게 했던 유상(儒商) 자공(子貢)이 있었다. 유럽의 르네상스를 촉발한 명(明) 영락제때의 환관(宦官) 정화(鄭和) 대함대가 있었으며, 정화의 지도를 손에 든 콜럼버스가 후에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량, 관우, 장비, 그리고 알리바바 마윈이 중국 역사 이래 최고의 드림팀이라고 간주한 서유기의 현장법사와 그의 제자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비즈니스 그룹이 일찍이 존재 했었다. 밖으로는 초국가 민족네트워크인 화교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오늘날 중국경제발전 신화의 기반이 되어준 쿨리(coolie)에서 화상(華商)으로 부상한 중국 화교들의 창업과 수성의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이렇게 길고 험난한 역사의 터널을 건너서 인도, 아라비아등과 함께 세계 4대 상인의 하나인 차이나머천트(CHINA MERCHANT)인 '중국상인' 탄생되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인 상인(MERCHANT), '차이나머천트'의 '상(商)' '인(人)'이라는 말은 이미 3000년이 넘는 역사기원을 갖고 있다. 원래는 단지 '상나라 사람'이라는 뜻이었는데, 기원전 1046년 주(周)나라에게 정복당한 상(商)(속칭 '殷')나라 유민들이 주공단의 요구로 장사를 하게 되면서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물건을 팔았고 사람들은 이들을 '(은)상인'이라고 불렀으며, 상나라 사람들의 교환·거래활동을 일컬어 상업(商業)이라 하게 되었다. '차이나머천트'에는 중국인들의 역사, 문화, 특히 비즈니스 정신과 철학이 담겨 있다. 중국 상인을 모르고 그들의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 중국과의 상전(商戰)에 뛰어드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한 중국과 중국인들을 상대로 우리는 제품을 만들어 내고 팔아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들의 언어와 비즈니스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기 위하여 밤을 새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문정혜 교수는?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글로벌비즈니 스 대학 아시아학부 중어과 ·中國 上海 復旦大學 中文係 졸업(문학 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한국어학당 원장 역임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제부처장 겸 한국 어학당 원장 역임 ·(사)산학연구원 URI차이나포험 학술 총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