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멀고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진 않을 것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감포 나정해수욕장의 '바다가 육지라면' 노래비는 끝없이 펼쳐진 동해바다를 가슴에 안고 망부석인 양 그리움에 애달파 운다. 노랫말을 읽으면 이별의 그리움에 눈물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겨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하다. 서울에서 섬마을로 오신 총각 선생님 곁에서 오래 머물고 싶던, 어느 순박하고 수줍음 많은 처녀도 떠오르고, 흑산도까지 밀려들어온 사연 많은 아가씨의 육지를 향한 그리움도 떠오른다. 얼마나 그리움에 사무쳤던지 그녀가 살던 섬까지 검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또 섬과 촌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수많은 처녀총각들의 이별과 그리움도 밀려오고 또 쓸려간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런 세월을 살아 온 우리들이다. 그 모든 이들에게 부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별의 공간이었고, 육지와 섬 사이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사랑을 끊어놓고 생이별을 강요하였다. 바다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이별을 강요당한 연인들은 섬에서도, 육지에서도 그리움에 밤마다 눈물 흘렸다. 하지만 그리움은 이별의 이유이면서 고된 노동의 희망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완전히 좋은 것도, 완전히 나쁜 것도 없듯, 절절한 그리움에 베갯잇을 적셔본 이들은 밤하늘의 달을 보고도 시인이 되었고, 바람 한 점을 안고도 가객이 되었다. 그리움이라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그들은 두려움도 불가능도 없었다. 한없이 부드럽고 무섭도록 강했다. 우리 시대의 편리하고도 놀라운 문명이 본의 아니게 저지른 범죄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힘이자 아픔인 그리움을 삭제해 버린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움의 본질인 기다림도 어느새 낯설어지고 불편해졌다. 우리는 마음먹는 순간 접속하고 통화하고 대면한다. 우리라는 '신인류(新人類)'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새로이 탄생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다리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이 새로운 인류는 안타깝게도 더 많은 이별을 저지르고, 수많은 이별들 속에서 이별의 충격조차 감각하지 못하는 불감증을 앓으면서 산다. 어쩌면 많은 이별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투쟁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으로 끝 간 데 없는 마음을 노래한 '바다가 육지라면'은 1970년대 온 국민의 애창곡으로 불릴 만큼, 요즘말로 하면 그야말로 '국민가요'였다. 섬에서, 서울에서 이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리움을 달래며 부른 노래였다. "이 몸이 철새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 있지 않을 것을…" 노랫말을 쓴, 경주 사람 정귀문 선생은 이 노래 외에도 우리 귀에 익숙한 배호의 '마지막 잎새', 김미성의 '먼 훗날' 등 1,000여 곡을 내놓았다. 경주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이별의 상처를 노래하는 '경주아가씨'도 발표하고, 팔순을 바라보는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라는 노래도 조만간에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46년째 해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과 즐거운 노래시간도 보낸다. 선생의 노래에는 여전히 사랑과 이별과 그리움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 어디에서 그렇게도 흥건한 눈물의 감성이 고여 있는 것일까. 평생을 퍼내고 퍼내도 여전히 넘쳐흐르는 그 그리움의 파도는 감포 앞바다의 검푸른 바다 빛깔만큼이나 짜디짠 아픔과 위로를 담고 있는 것일까. 선생의 노래들과 만나면 우리는 끝내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을 지우고 또 지우고자 발버둥 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용기 내어 아픔을 받아들이고자 하면 그리움도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선생은 여전히 낮고 질긴 소리로 노래하는 듯하다. 왜 그리움을 지우려고 하는가. 멀리 바다 저 건너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두고 떠나온 이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람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저렇게 그리움의 시간을 살아내야 할 존재가 아니던가. 그러니 기다림과 그리움의 아픔을 마치 포맷하려는 유혹이 밀려올 때마다, 우리 용기 내어서 한달음에 토함산터널을 벗어나 감포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나정해수욕장으로 달려가 보자. 거기서 차라리 뱃길을 훨훨 날아오르고픈 철새의 소망이라도 품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