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결국 오고만 말았다. 야대(野大) 위력이 제20대 국회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등 후반기를 맞는 박근혜 정부와 여권이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필자는 최근에 "야대로 여권(與圈)이 식겁(食怯) 할 것이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어찌보면 이 추측이 현실로 다가왔고, 그 여파가 경주지진만큼 올 가을 정국(政局)을 요동치게 할 것은 분명하다. 새누리당이 '식겁'하고 있다. 지난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더민주당 주도로 국민의당이 동조한 가운데 표결에서 찬성 160표로 김 장관은 국회에서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김 장관의 해임 장면을 시청한 국민들, 그리고 이 과정에 빚어지는 국회 상황은 1천만 관객을 동원시킨 영화감독도 연출하지 못 할 수준의 막장 드라마였다. 통상 국회 내에서 강성 초선들이 자당의 '공격수' 역할을 하는데, 어찌된 심판인지 20대 국회는 여당 원대 대표가 국회의장단 아래서 고성을 지르는 등 웃지 못 할 진풍경이 현재 '국회 시계'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국가 위상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멈추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협치(協治)라는 용어 사용은 불과 1년도 되지 않는다. 강공 일변도의 현 정부가 지난 총선이후 여야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했다. 그리고 야대여소(野大與小) 분위기 속에서도 '협치'는 간간히 볼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들이 미국을 함께 방문하는 등 대한민국 정치권의 화합한 장면이 미국 언론에 방영되는 등 국내 정치의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화목한 장면이 불과 몇 주 만에 붕괴되면서 협치가 대치(對峙) 또는 '경색정국'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야측 입장에서 김 장관의 문제는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국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과 힘겨루기의 '제물(祭物)'로 김 장관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집권당 대표가 신성해야 할 국회에서 '밥 소리'나 하고, 더군다나 야당이 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합법적 의사진행방해행위)를 여당이 하는 등 볼썽사나운 장면을 드러내 보는 이들이 실소를 지어야만 했다. 이 '대치정국'의 중심에는 박 대통령이 있으며, 전략은 후퇴불가(後退不可)다.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여인의 몸으로 황제(皇帝)의 자리에 오르거나, 태후(太后)의 자리에서 황제의 권한과 똑같은 '권력'을 휘두른 인물은 3명에 불가하다.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후(呂后)와 당태종의 후궁 출신인 측천무후(則天武后), 청나라 말기 함풍제의 부인 서태후 등 3명이다. 이 중 가장 정치력이 뛰어난 이는 '여후'다. 여후는 유방조차 곤욕을 치른 흉노(匈奴)를 설복시킨 '정치력'이 주목을 받는 부분이다. 혜제 3년 흉노의 선우 모돈(冒頓)이 여후를 희롱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이에 대한 여후 주재 대책회의에서 참석한 장수들은 '군사동원' 등 강경 일변도였다. 그런데 의사결정권자인 여후는 스스로 겸손한 태도로 모돈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수레2대와 말 8필을 함께 보내자, 이에 모돈은 전자의 결례를 사죄하고 화친(和親)을 맺게 된다. 사마천은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에 "군주와 신하, 백성 모두가 무위지치(無爲之治)하며 편히 휴식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여후의 정치력이 출중했다는 것을 사마천이 인정한 셈이다. 여후는 흉노를 '무력(武力)'이 아닌 절묘한 '소통(疏通)'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부전승(不戰勝)'을 거둔 것이다. 정치상황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난국(亂局)을 푸는 방식에 따라 정치인의 급(級)이 정해진다. 하지만, 현재 정국을 보면 여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흉노와의 대치(對峙) 상황을 진정성과 소통을 통해 협치(協治)를 이끌어 내면서 국가를 평안하게 한 결정적 주체는 '참모'가 아닌 여성권력자의 탁월한 정치력과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