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보문단지와 황룡사 벚나무 길, 가로수 잎들이 누럿누럿 보기좋게 물들기 시작하고, 소리도 없이 잎들이 막 떠나고 있다.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황금빛으로 풍성한 풍년을 예고하는 듯 하늘은 푸르다. 경주의 가을 산야(山野)는 이토록 아름답게 장식되고 있는데, 경주 시민들은 지금 우울하고 불안한 가을이다. 경주가 지진(地震)으로 '특별재난지구(特別災難地區)'로 선포된 후,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고, 아직도 지진의 여파((餘波)에 공포를 느끼며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이 늘고만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 천재지변(天災地變)을 어쩌랴! 경주 시민들은 담담한 마음으로 이 고통, 슬기롭게 극복해 갈 것이다. 가슴이 허전해지는 이 가을날, 나는 충담 스님이 저승에 간 누이의 죽음에 재(齋)를 올리며 불렀다는 '제망매가'를 떠 올리며 배반동 근처 '사천왕사(四天王寺)' 터를 찾는다 신라시대 사천왕사에는 대금을 잘 부는 월명스님이 머물고 있었고, 죽은 누이의 49재도 아마 이 '사천왕사'에서 올렸을 것이다. 나는 지금은 황량한 폐사지 사천왕사, 두 개의 목탑터를 지나 금당터로 추정되는 폐허 앞에 서 본다, 금당터 앞에서 천 몇 백 년 전 어느 가을날 죽은 누이를 위해 49재를 올리며 범패를 부르는 충담스님! 그 애틋한 목소리, '제망매가'가 들려올듯하다.  죽고 사는 길이/ 여기(이 땅에)있음에 두려워하고 (우리는)'나는 갑니다' 말도/못다 이르고 가 는 것 아닙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과 같이 한 가지에 같이 나고는/가는 곳을 모르는 구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내/도 닦아 기다리고져   -향가, 제망매가 거의 완벽한 구조의 울림이 있는 시(詩)다. 누군가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오누이는 한 가지에 난 잎사귀처럼 같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생(生)을 마감할 때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른 바람에 각각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이,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저승에서 만날 누이, 도나 닦으며 기다리겠다는 스님의 그 붉은 마음이 그리워지는 가을날이다. 울산가는 7번 도로변, 작고 아담한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서 있는 '사천왕사'.  잡풀이 자란 언덕, 풀 섶 사이로 문무왕을 기념하는 비석 받침, '사천왕사지 귀부 두 개'가 쓸쓸하게 엎드려 있다. 폐사지에 부는 바람은 언제나 쓸쓸하다. 절터 위 '낭산'에는 '선덕여왕릉'이 있고, 당나라 군사의 배를 침몰시킨 문두루비법이 전해지는 신묘한 절,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스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유명한 '사천왕'의 조각도 있었고, 양지스님. 월명스님, 당대 최고의 선사들이 머물렀던 절, 사천왕사! 여기서 한국최고의 서정시, 향가 '제망매가'가 탄생할 만하다.  나는 동해남부선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7번 도로 건너 있는 폐사지 '망덕사'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여기 저기 떨어지는 나뭇잎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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