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 적봉시 임서현(林西縣)의 남쪽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 북쪽 쌍정점향(雙井店鄕) 백음장한촌(白音長汗村)에서 백음장한유지(遺址)가 발견되었다. 1988~1991까지 3차례에 거친 발굴을 통해 7267.3㎡의 주거유적이 발견되었다.  백음장한 유적은 5 시기의 고고학문화가 시기를 달리하며 이어지는 환호취락유적이다. 백음장한 1기는 소하서문화에 속하며, 백음장한 2기(갑유형, 을유형)는 흥륭와문화, 백음장한 3기(갑유형, 을유형)는 조보구문화와 홍산문화 사이, 백음장한 4기는 홍산문화 중기, 백음장한 5기는 소하연문화에 속한다.  흥륭와문화(B.C. 6200~5400)에 속하는 백음장한 2기 유적은, 환호로 둘러싸여 2개의 환호취락(A지구, B지구)에는 각각 약 30개의 방이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다. 환호취락 뒤쪽 산 능선을 타고 이어진 3개의 묘장 지역(Ⅰ.Ⅱ.Ⅲ. 묘장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8000년 전 흥륭와문화에 속하는 백음장한 2기의 묘장에서는 놀랍게도 동북아시아 최초의 다양한 형태의 돌무덤(石墓)이 발견된다. 기본적인 적석총과 더불어 발달된 '적석 석관묘(積石石棺墓)'도 발견 된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돌무덤은 3가지 형태이다. 흥륭와문화 시기인 백음장한 2기에는, 흙구덩이에 시신을 묻고 위에 큰 돌을 쌓아 놓은 '토광묘+적석'형태의 기본적인 적석총과, 구덩이 밑바닥에 판석을 깔고 주위에 판석을 세워서 석판묘(石板墓) 혹은 석관묘(石棺墓)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큰 돌무더기로 쌓아 올린 '석관묘+적석'형태의 '적석 석관묘'도 이미 보인다. 홍산문화 시기인 백음장한 4기에서는, 위에 돌무더기를 쌓지 않은 전형적인 석판묘 혹은 석관묘도 보인다. 아직은 여려 층의 '계단식 적석총'은 발견되지 않는다. 계단식 적석총은 홍산문화 시기에 최초로 또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백음장한 2기부터 발견되는 기본적인 '적석총'과 '적석 석관묘'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것으로 8000년 전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아직 연구를 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세계 최초일 가능성이 높다.  요하문명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적석총의 기원을 홍산문화 시기로 알고 있고, 필자도 최근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이전인 흥륭와문화에서 속하는 백음장한유지 2기에서 일반적인 적석총뿐만이 아니라 발달된 적석총인 '적석 석관묘'도 이미 발견되었다. 다만 백음장한 2기 유적지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흥륭와문화 시기의 묘제는 모두 토광묘(土壙墓)이기에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돌로 무덤을 만드는 다양한 형태의 돌무덤은 동이족 문화의 산물이다. 만주일대 고조선·흉노·돌궐·고구려뿐만이 아니라 백제·가야·신라·일본 등으로도 이어지는 묘제가 적석총이다.  '적석 석관묘'의 최종적인 발전 단계인 '계단식 적석총'은 홍산문화 단계에서 최초로 보인다. 이 '계단식 적석총'이 바로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광개토대왕릉 같은 것이다. 다양한 적석총은 요하문명 흥륭와문하 시기에 기원하여 홍산문화를 거쳐 최종적으로 '계단식 적석총'으로 발전하고, 이것은 고구려-백제-가야-신라-일본 지역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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