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예위 심사 및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한 일간지는 정치검열을 위한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담은 문건이 있다고 보도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주장에 우리나라 문화계 전반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영화계가 심각하다. 박찬욱, 송강호, 김혜수, 박해일 등이 거론된다. 이들은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안목을 가졌거나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에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왔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21세기에 가능한 일인지 황당하기 짝이 없다. 특히 '문화융성'을 주창하던 박근혜 정부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겉과 속이 다른 대표적인 예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이런 일들은 허다하게 반복됐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전두환 정권이 출범한 후 배우 박용식씨가 대통령과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이 금지됐다. 그는 1992년 방송에 복귀할 때까지 참기름집을 운영하면서 생활을 영위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순자'라는 이름을 방송에 쓸 수 없도록 했다. 영부인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정환의 소설 '순자야 문열어라'가 전두환 정권에 핍박을 받았다는 루머도 나왔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는 가요계가 서리를 맞았다. 금지곡이 가장 많이 양산됐던 시절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은 '불순한 내용을 연상시킨다'며, '왜 불러'는 '반항적인 정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당시 시위대가 많이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문화예술의 사전 검열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그러나 교묘하게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은 사전 검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문화예술에 제갈을 물리면 그 나라는 병든 나라다.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