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유적에서, (1) 실제 인간의 1~3배에 달하는 여신을 모신 단독의 여신사당인 여신묘(女神廟) (2) 한 변이 20~30m에 달하는 수많은 계단식 적석총 (3) 하늘에 제사를 지낸 원형 3단의 천단과 방형의 지단 등이 발견되면서 중국에서는 이 시기에 '초기 국가 단계'인 고국(古國) 단계 혹은 '초기 문명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어느 시기에 '문명 단계' 혹은 '국가 단계'에 진입했는가 하는 점은 오랜 논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학계에서는 청동기시대를 문명 혹은 국가 단계로 진입한 시기로 보고 있다. 따라서 문명 혹은 국가 단계라고 하려면, (1) 청동기 (2) 문자 (3) 계층적 신분 분화와 이를 통치할 수 있는 절대적 왕권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청동기나 문자가 없는 문명은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마야문명이나 잉카문명은 청동기가 없는 문명이었다. 세계 최대의 영토를 정복한 몽골은 최대의 제국을 형성할 때까지도 문자가 없었다. 통치의 필요성 때문에 새롭게 몽골문자를 만들었던 것이다. 거란족이 요나라를 건설하고 거란문자를 만들고, 만주족이 청나라를 건설하고 만주문자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왕권의 확립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우하량유적으로 대표되는 홍산문화 후기에는, 문자나 청동기는 보이지 않지만 신분이 분화되고 절대적인 권력자가 존재했다고 본다. 중국 고고학의 대 원로학자인 고 소병기(蘇秉琦) 선생은 그것을 '고국(古國)' 단계로 보았다. 소병기는 '고국 - 방국(方國) - 제국(帝國)' 3단계 국가론을 제시하였는데, 최초로 '고국 단계'에 진입한 것이 홍산문화 후기라는 것이다. 중국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문명 단계'나 '국가 단계'에 진입 시기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고 현재도 논쟁 중이다. 이것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약 5000년 전에 이미 문명 단계,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에서는 (1) 요서 지역에서는 홍산문화 후기에 (2) 장강 유역에서는 양저문화 초기에 (3) 중원 지역에서는 앙소문화 후기인 묘저구문화 시기에 '초기 국가 단계', '초기 문명 단계', '고국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대표적인 학자는 소병기를 필두로 곽대순(郭大順), 한건업(韓建業), 여서운(余西雲), 장이(張弛) 등이 시각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시기의 초기 국가 단계의 명칭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고국(古國) 혹은 '군장 국가(Chiefdom)'를 의미하는 추방(酋邦) 등으로 부른다. 이런 시각들은 홍산문화 우하량유적 발견 이후 급격하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둘째, 약 5000~4000년 전에 문명 단계,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이 시각에서는 (1) 산동 지역의 용산문화 (2) 중원 지역에서는 요임금의 왕성으로 알려진 도사(陶寺)유적, 황제(黃帝)의 도성으로 알려진 석묘 유적에서 보듯 기원전 2500~2300년에 국가 단계에 진입한다고 본다. 국가 단계의 명칭은 방국(邦國) 혹은 방국(方國)으로 사용한다. 방국 단계에서는 이미 중심지가 생기고 가까운 주변의 작은 방국에 대한 장악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학자는 고고학계의 원로인 엄문명(嚴文明)를 필두로 조휘(趙輝), 조춘청, 아노(何弩), 전요붕(錢耀鵬) 등이 있다.  셋째, 약 4000년 전에 문명 단계, 국가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하(夏)나라의 도성인 이리두(二里頭)유적 단계에 본적적인 국가 단계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국가 단계의 명칭은 왕국(王國) 혹은 왕조국가(王朝國家)를 사용한다. 왕국 단계에서는 중원 지역 대부분에 흩어져 있는 많은 제후국에 대한 장악력이 형성되어 있는 '왕국+제후국'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는 고고학계의 원로인 하내를 필두로, 유리(柳莉), 진성찬(陳星燦), 허굉(許宏) 등이 있다.  중국학계의 논의들을 정리해보면 국가의 발전단계는 (1) 약 5000년 전 고국(古國) 혹은 추방(酋邦=Chiefdom) 단계 (2) 약 4500년 전 방국(邦國) 혹은 방국(方國) 단계 (3) 약 4000년 전 왕국(王國) 단계 (4) 진나라 이후의 제국(帝國) 단계로 발전해 간다. 요하문명의 발견 특히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의 발견 이후 '5000년 중화 문명'을 공공연히 외치는 것은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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