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양치기 소년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해대다가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도 그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이솝 우화가 있다. 거듭되는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는 이는 신뢰를 잃게 되고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28일 친박계 의원들은 '대통령의 명예퇴진을 권유하겠다'고 뜻을 모았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워 정치권에서 온갖 기득권과 호가호위를 누렸던 이들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난 뒤 철저하게 숨어 지내다가 불쑥 나타나서 꺼내든 카드다. 청와대는 이들의 제안에 어정쩡한 답을 내놨고 각종 언론은 이들이 꺼내든 카드의 저변에 꼼수가 깔려 있다고 일제히 평가했다. 그동안 친박계 의원들이 이처럼 혼란스러워진 국정을 만들게 된 데 대한 책임이 크다는 것이 국민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가까이 일체 언론이나 공식석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다가 불쑥 '명예퇴진'이라는 말을 들고 나왔다. 어느 누구 하나 지금의 이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겠다는 용기 있는 의원이 없었다. 탄핵이 임박한 가운데 꺼내든 '명예퇴진' 카드는 탄핵 일정을 최대한 늦추고 준비되지 않은 자신들의 대권 주자를 정해 정권 재창출을 꾀해보겠다는 의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꼼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겉과 속이 다르든 말든 그동안 대통령이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둑이었던 친박계가 '명예퇴진'을 권유하겠다는데도 귓등으로 듣고 있는 대통령의 태도다. 세상 그 누구가 뭐라든 자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기를 마지막까지 채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 자리는 누가 줬으며, 그 자리에서 누릴 권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까마득히 모르는 처사다. 국민의 대다수가 대통령은 당장 퇴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대통령과 그 곁불을 쬐고 있던 친박계는 '늑대가 나타났다'를 외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우리는 5천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에 살아가고 있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