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매끈매끈 누르면 터질 것 같은  보얗고 도톰한  조그만 산새알.  가만히 귀에 대면 들려오는 듯 엄마 품이 그리운  아기새의 숨결 소리.  꼬옥 품어 주던                                         엄마의 나래깃                                          따사로움도 묻어 있는                                           엄마 잃은 산새알.  (1983년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 었던 허동인 시인의 '산새알')   선도산이 곱게 물들었다. 물에 비친 산의 모습이 또 한 장의 데칼코마니다.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억새가 손을 흔든다. 잘 정돈된 강변 산책로를 걷다보면 반가운 얼굴들을 자주 만난다. 활짝 웃는 모습들이 단풍보다 더 곱다. 가벼운 눈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덥석 손이라도 잡고 싶은, 어쩌면 와락 껴안고 싶은 그리운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벌써 가을이 깊어진 탓이리라.  문득 아침마다 이 길을 걷던 키다리 아저씨 허동인(1941~2009) 시인을 생각한다. 중풍으로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 새벽시장에서 두 손 가득 홍시를 사오던 사람, 아내가 좋아하는 들꽃을 한 아름 꺾어 머리맡에 놓아주며 콧노래를 불러주던 영원한 소년.  허 시인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에 귀국해 감포에서 살았다. 감포초등학교와 감포중학교,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지인 감포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초등학교에서 15년, 중?고등학교에서 26년, 총 41년을 학생들과 함께 했다.  모교인 감포초등학교에서는 등사판으로 '조갑지'라는 어린이 문집을 만들었으며, 경주여자고등학교에서는 '곡옥문학회'를 조직해 지도했다. 신라중학교에 근무할 때는 학교 문집 '들녘 문학'을 펴내는 등 글짓기 지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상과 조선일보 문예지도교사상을 받았다.  허 시인은 1963년 동시 '병원집 아이'로 공보부 신인예술상을, 이듬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빗방울'로 입상했다. 이후 평생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시를 썼다.  아침 산책길에 만났던 철새와 들꽃 등 소소한 일상에서 얻은 소재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이를 시로 옮겼다. 선한 눈빛으로 조약돌을 줍고 노래를 불렀다. 그가 스스로 밝히기를 "산에서 진달래꽃을 따 먹어도 마음이 아파 가지째로 꺾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약한 마음이 대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약돌 형제', '조갑지의 꿈', '산골 우체부 아저씨' 등 동시집 10권과 동시선집 2권이 있다. 2015년에는 한국 아동문학사를 빛낸 시인 111명에 선정돼 동시선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경주문협회장, 한국아동문학가협회 경북지부장을 지냈으며, 경북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경주시문화상, 경상북도문화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등을 받았다.  또한 '과일나무', '산새알', '병원집 아이' 등 그의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들은 지금도 아이들이 즐겨 부른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보름달처럼 환하고 밝게 살려던 시인의 숨결, '허동인의 동시 감상 교실'을 만날 수 있다.  어느 날 주머니에서 꺼낸 조약돌 하나를 건네며 "조시인, 이 녀석 참 예쁜 놈이요. 잘 키워 보세요" 선문답 같은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그 조약돌은 얼마나 자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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