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이 신라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 '신라문물연구'9집을 발간했다. 신라문물연구는 국립경주박물관이 2007년 부터 발간해온 기관지로서 이번 9집에는 학예연구사들이 분석·탐구한 연구논고 7편이 게재됐다. ■천마총 출토 금동용봉무늬 그릇은 신라왕의 제기 신대곤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천마총(天馬塚)출토 금동용봉문합' 연구 논고에서 천마총 부장궤 출토 용봉무늬 그릇의 무늬를 집중 분석했다. 그릇의 무늬는 도교적 신선관념이 내재된 신화의 일부를 선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신라인의 내세관이 중국 진한대 이래의 선도적 정신세계와도 상통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용봉무늬 그릇(龍鳳文盒)에 그려진 무늬의 배치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공간구분이나, 구도적 배치와 유사한 점을 나타냈다. 또 이를 제작했던 마립간(麻立干) 시기 신라 사회의 수공업 활동을 조명했다. 이 그릇이 신라의 궁중수공업 공방에서 제작된 부장 용기이며, 무덤에 묻힌 사람이 죽은 뒤 안락(安樂)을 기원하고 신선세계로의 올라갈 것 즉 승선(昇仙)을 염원하는 데 사용된 주술적 제기임을 밝혀냈다.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障泥)로 유명한 천마총은 지증마립간 혹은 소지마립간 등, 신라 마립간 혹 왕의 무덤으로 추정했다.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건물 양무당의 건립시기는 1680년 이태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논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양무당(養武堂) 상량문(上樑文) 해제'에서 현재 경주문화원 내 양무당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밝혀냈다. 양무당은 조선시대 치안과 군사를 담당했던 무임(武任)의 집무소로 경주부의 대표적 관아건물이었다. 본래 서부동(현 우방명사마을아파트)에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 오랫동안 박물관 전시관으로 사용됐다. 연구를 통해 양무당의 건축 시기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1680년(조선 숙종 6년)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경주박물관은 아카이브 소장 자료인 양무당 상량문을 해제하고 부록으로 원문과 번역문, 주석을 수록해 양무당의 축조동기와 건축과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황룡사 출토 금속품, 천마총 말다래 등 소장품의 과학적 분석 신용비 학예연구사는 '경주황룡사 출토 금속품의 합금조성과 제작방법 조사'를 통해 황룡사 회랑·금당지·목탑지 등에서 발굴된 금속품 14점을 성분 분석했다. 그 결과, 합금조성(合金造成)과 제작기법을 추적하고 종래 은제금구(황룡87)은 금은제금구로, 청동제장식구은 동제장식구로, 청동판구는 동판구로, 아연판구는 연판구로 수정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이승렬·박용수 학예연구원은 '황오동 14호분·계림로 32호분 출토 철부의 보존처리와 제작기법 연구'에서 해당 유적의 쇠도끼(鐵釜)는 위 아래 한싸의 거푸집을 이용해 제작되었음을 밝혀냈다. 또 김종우 학예연구사는 '3D스캔을 이용한 천마총 출토 장니의 정밀실측'을 통해 천마총 장니(障泥) 즉 말다래를 대상으로 한 3D스캐닝 과정을 소개하고 이것이 진열시 받침대 제작이나 복제품 제작에 활용될 수 있음을 환기시켰다. 오세은 학예연구사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수집품에 대한 고찰' 논고에서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가시이겐타로 등 일본인 3인의 수집품이 광복 후 일본에 불법 반출되지 않고 국립박물관에 입수된 경위를 소개했다. 이들의 수집 방향은 예를 들면 중국서화풍을 따른 조선의 작품들에 집중되었던 것과 같이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뒷받침하는 조선의 서화가 중국의 아류라고 규정하려는 풍조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장성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