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판독된 울진 성류굴의 진흥왕 관련 명문은 삼국사기에 비워진 기록인 진흥왕 20~22년 사이 신라 진흥왕이 행적을 알 수 있는 사료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의 관측이 나온다. 22일 명문이 발견된 성류굴 현장에서 자문회의에 참석한 노중국(계명대 명예교수), 주보돈(경북대 명예교수), 장원섭(경민대 교수), 이영호(경북대 교수), 이용현(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관련 학계의 권위자들은 이 같은 명문의 사료적 가치를 인정했다. 자문위원들은 "명문은 성류굴을 방문한 시기와 사람이 기록됐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명문에 나오는 '경진 6월'이라는 기록 뒤에 진흥왕이 방문자로 등장해 진흥왕의 재임기간(540~576) 중 경진년은 진흥왕 21년 서기 560년에 해당되므로 560년 6월에 신라 진흥왕이 울진을 행차하고 남긴 기록임을 알 수 있다. 또 진흥왕의 호칭은 기존에 확인된 568년의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진흥태왕(眞興太王)'으로 나타났고 이번에 판독된 경진년명에서는 '진흥왕(眞興王)'으로 기록하고 있어 시기 및 정치적 상황에 의한 왕호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여겨진다. 중국 사서인 북제서 권7 제기7 무성 하청 4년 2월 갑인조에 "신라국왕 김진흥(金眞興)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로 기록되어 있는데, 무성제 하청 4년은 신라 진흥왕 26년에 해당돼 서기 565년이 된다. 이 북제서로 말미암아 진흥왕이 살아있을 때의 이름으로 밝혀졌으며 이번에 판독된 경진년명은 이 문헌의 기록보다 5년 더 빠른 1차 사료인 금석문으로 그 가치가 높고 북제서의 기록을 입증하는 사료가 된다. 특히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조에는 진흥왕 20년(559)~22년(561)의 기록이 비워져 있어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번 명문 판독으로 인해 이 공백을 메워줄 획기적 사료로 그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진흥왕이 560년 울진 성류굴을 다녀갔다는 명문이 1988년 국보 제242호인 울진 봉평리 신라비의 발견에 이어 또 하나의 신라사 연구의 획기적인 사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