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은 최근 성류굴 내부 제8광장에서 발견돼 보고된 다수의 신라시대 명문 중에서 진흥왕이 560년 6월에 성류굴을 다녀간 기록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명문은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柵作익<木+益>父飽(책작익부포)/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眞興(진흥)/王擧(왕거)/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다. 이 명문은 "경진년(560, 진흥왕 21) 6월일, 잔교(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리모양의 구조물)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 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 이 명문을 통해 진흥왕은 경진년, 즉 560년 6월에 성류굴에 행차했으며 이동에는 선박이 활용됐고 행차에는 50인이 보좌했으며 행차와 관련해 동굴 내부를 잇는 잔교가 설치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를 비롯해 기존 문헌에는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 심현용 박사는 "향후 울진지역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며 "성류굴의 신라 명문들은 국보 제147호인 울산 울주군 천전리 각석에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한권의 역사책이 새로 발견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류굴은 울주 천전리각석처럼 신라 화랑뿐만 아니라 진흥왕까지 다녀갈 정도의 신성한 명승지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화랑 수련장소로 여겨졌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류굴의 내부 각석문은 지난 3월 21일 처음 발견된 후 지난달 11일 최초로 언론에 보도됐으며 20일 학계에 발표된 바 있다. 이때 '경진'이란 기년을 비롯해 일부 판독이 이뤄졌지만 '진흥왕'을 확정짓지는 못했다. 이후 울진군은 조사를 지속해 '眞興王(진흥왕)'등 모두 25자의 명문을 확인한 것이다. 경진년 진흥왕 명문은 성류굴 제8광장 1지굴의 큰 석주에 위치하며 지표에서 약 230㎝ 높이에 가로 35㎝, 세로 40㎝ 정도의 굴곡진 석주면에 우서(右書, 글자중심)로 음각돼 있다. 명문은 세로 6행으로 1행에 5자, 2행 5자, 3행 5자, 4행 2자, 5행 2자, 6행 6자로 모두 25자가 새겨졌으며, 글자 크기는 가로 7~8㎝, 세로 7~12㎝ 정도인데 '眞興王擧(진흥왕거)'의 4자는 다른 자보다 크게 써 강조했다. 글자는 예서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해서체다. 울진군은 22일 계명대 노중국 명예교수 등 관련 학계 권위자를 초청해 향후 전수조사 및 보존대책과 활용에 대한 현장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자문위원들은 "동굴 안에서 신라 명문들이 발견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당시 성류굴은 신라의 명승지로 삼국시대부터 화랑들의 수련장소였음이 처음으로 밝혀졌다"며 "화랑들이 동굴에서 수련하고 남긴 명문들은 신라의 정치사, 화랑도, 불교사, 군제사, 인명사 등의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지금까지 발견된 명문만으로도 국보급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동굴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급하며 그 중요도와 난이도로 봐 문화재청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전문기관에서 직접 조사해야 할 상황으로 국가기관의 전담조사가 필요하다"며 "이번에 발견된 명문 가운데 특히 화랑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신라의 삼국통일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매우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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