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숨지기 전 재산을 물려받았더라도 이후 상속을 포기했다면 법률상 '상속인'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른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限定違憲)' 결정을 내린 조항을 '합헌'으로 보고 내린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박모씨(57·여)가 서광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상속세부과처분 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박씨는 "상속개시전에 재산을 증여받고 상속을 포기한 자에게 상속세 납부의무가 없다고 해석해 다른 상속인에게만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상속세부과처분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헌법소원을 냈었다.
1998년에 개정되기 전의 구 상속세법 제18조 1항은 '상속인은 상속재산 중 각자가 받았거나 받을 재산의 점유비율에 따라 상속세를 연대해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상속세법 제3조는 '상속인'의 범위에 '민법의 규정에 의해 상속을 포기한 자'를 포함하고 있다.
1·2심 재판부는 1998년 구 상속세법 조항을 '합헌'으로 해석한 대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대법원 재판부 역시 "상속포기자는 상속세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상속인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해당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앞서 지난해 10월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헌재는 당시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상속인을 상속개시전에 상속재산가액에 가산되는 재산을 증여받고 상속을 포기한 자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문제가 된 법률에서 소정의 상속세 납세의무를 부담하는 '상속인'에 상속포기자가 포함된다고 해석하게 되면 상속포기의 소급효에 의해 납세의무를 부담하지 않을 것으로 믿던 상속포기자의 신뢰보호에 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속포기자가 상속개시전 일정기간 내에 재산을 증여받아 그 가액이 상속재산가액에 가산된다 하더라도 이는 상속세 과세가액 산정방식에 관한 규정일 뿐이므로 상속을 포기한 자의 상속세 납세의무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법 제18조 제1항을 '상속인이 상속포기자의 사전 증여재산등을 포함한 상속재산 중 자신이 받았거나 받을 재산의 점유비율에 따라 산출된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해석한다면 상속포기자가 '상속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상속인의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법령의 해석·적용권한은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며,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앞서 법령을 해석하거나 그 적용범위를 판단하더라도 헌재의 법률 해석에 대법원이나 각급 법원이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법 조항을 둘러싼 위헌논란을 벗어나 '상속인이 상속포기자의 세금까지 납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상속인이 내야 할 상속세는 상속포기자의 증여재산까지 포함한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받거나 받을 재산의 점유비율로 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가 대법원 판례를 뒤집고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이후 다시 대법원이 이를 뒤집은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소송 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세액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이 같은 입장을 보임에 따라 '재판소원'이라는 사태에 이르지는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