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범인인 김현희(47)씨가 지난 1987년 이후 언론 인터뷰 등에 간간이 등장 했지만 지난 97년 12월 결혼이후 12년 만인 11일 오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1시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일본인 여성 다구치 야에코의 가족들과 벡스코 특별 면담장에서 만난지 1시간 여 뒤인 12시30분께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국내 외 100여개의 언론사 기자들로 북적였으며, 특히 일본의 NHK방송, 교토통신, 마이니치, 요미우리신문 등이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김씨의 발언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열띤 취재경쟁을 펼쳤다.
이날의 만남에 대한 심경을 묻는 질문에 이즈카 시게오씨(70)는 "오늘은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날이다.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다가 오늘에서야 만나게 해준 한국과 일본 정부 양측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 이즈카 고이치로씨는 "이번 만남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해 기쁘고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확신을 받았으며, 오늘 만남이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 만남을 앞두고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이즈카 고이치로씨가 어머니를 많이 닮아 마음이 아프고 하루빨리 다구치씨 가족이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왜 이제야 만날 생각을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언젠가는 꼭 한번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다만 그동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가 없었으며 이제야 양국의 협조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또 "결혼이후 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생활했으며, 칼(KAL)기사고 유족들의 아픔을 생각해 조용히 살고 있었다"며 "지난 정부시절 많은 일들을 겪었으며, 현 정부에서 지난 일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 아직도 일고 있는 KAL기 폭파 사건 조작 의혹에 대해 김씨는 "분명한 것은 폭파사고는 북한이 저지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20여년이 지나서도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이 한 사실을 이들이 인정하고 또다른 목적이 없다면 나서서 진실을 밝힐 용의가 있으며, 화동사진은 이미 밝혀진 사실과 다를 것이 없고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납북자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할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수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별다른 결과가 없었다며,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북한도 최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된 것을 계기로 무조건 납북자를 죽었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해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다구치씨 가족은 이번 만남에 대해 "한일 정부가 공동으로 대처해 나간다면 좋은 방안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발표한 보고서는 날조된 것으로 납북자가 모두 생존해 있을 것으로 보고 활동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김씨는 폭파사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지난 1990년 사면돼 그동안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일본인 납치자 문제의 진실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일본이 한국정부에 협조를 구해 이번 면담이 성사됐다
북한은 그동안 1978년 실종된 다구치의 납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지난 2002년 9월 일 북 정상회담 때 '다구치는 198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무덤이 유실돼 유골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최근 다구치씨는 1987년에도 일본어를 가르쳤고 아직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날 공개석상에 나온 김씨를 통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KAL기 폭파사고 조작 의혹에 대해 '유일한 증인'인 김씨가 이번 회견을 통해 의혹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날 공식기자회견을 마친 김씨와 다구치씨 가족은 서로 악수를 나눈 뒤 아쉬운 듯 짧은 대화를 나눈뒤 김씨가 먼저 자리를 떠났으며, 다구치씨 가족은 일본 정부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공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