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장작이라면 미국 경제는 너무 젖었고 한국경제는 덜 말랐다.” “비교환성 통화를 가진 나라의 비애다.” “꽁치 잡다가 참치 잡으려다가 밥 굶을 뻔 했다.”
동북아문제연구기관인 '니어(NEAR)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정덕구 전 산자부 장관이 특유의 화려한 수사로 한국과 미국 경제를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11일(현지시간) 뉴욕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비유를 곁들인 화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정 전 장관의 젖은 장작론은 경제 회생 처방을 신문지나 석유 등 일종의 불쏘시개로 본다면 미국의 현 경제는 너무 젖은 장작이어서 불을 붙이기가 어렵다는 것. 자칫 불쏘시개(경기부흥책)만 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경제는 덜마른 장작 격이어서 역시 불을 지피기는 어렵지만 미국보다는 나은 상황이라는 것. 특히 1998년 외환위기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응을 잘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버블이 꺼졌는가라는 논란에 대해 그는 “한국은 애당초 버블이 심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즉 노무현 정권 시절 실질성장률(4%)이 잠재성장률(4.5~5%)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버블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것. 다만 자산시장의 경우 한국인 특유의 토지에 대한 애정 때문에 거품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위기 발생 시 한국보다 문제가 더 심각한 국가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면서 특히 한국의 원화는 '비교환성 통화'라는 비애를 갖고 있어 '외화 유동성 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장기적으로 원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갖고 있는 시장과 ‘군주’와 ‘폭군’의 두 얼굴을 갖고 있는 정부라는 측면에서 위기 대응이 논의되야 한다면서 예의 ‘젖은 장작론’에 근거해 3분기는 돼야 확실한 경기 전망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과다시장, 과소정부의 미국과 달리 과소시장, 과다정부 체제인 한국의 현실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개입하면 '정부의 실패'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뉴욕에서 외채 협상의 실무 주역으로 활약했던 정 전 장관은 당시 기억을 “꽁치 잡다가 참치 잡으려다가 밥 굶을 뻔 했다”는 해학적인 말로 대신하고 “한국 원화가 비교환성 통화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