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시파(時派)’입니다. 뒤주 속에서 8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어간 사도세자는 당파싸움의 희생물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소론 계열의 학자들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10세 때는 신임옥사(辛壬獄事) 사건을 두고 노론을 비판하는 등 노론의 미움을 받아 오다 나경언의 세자의 10가지 비행을 고한 사건으로 인해 서인으로 폐해진 뒤 결국 뒤주 속에서 죽게 됩니다. 당쟁을 없애고자 탕평책을 폈던 영조는 그가 죽은 후 때늦은 후회를 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내린 시호가 생각하고 애도한다는 뜻의 '사도(思悼)'입니다. ‘사도세자(思悼世子)’라는 이름은 그가 죽고 난 후 불려진 이름이죠. 사도세자가 죽은 후 노론은 또다시 '벽파(僻波)'와 '시파(時波)'로 나뉘게 됩니다. 시류를 무시하고 당론에 치우쳐 그의 죽음을 당연시하는 부류가 '벽파(僻波)'이고, 시류에 영합하여 그의 죽음에 동정론을 편 부류가 '시파(時波)'입니다. '시파(時波)'는 탕평책을 지지하여 '벽파(僻波)'와 대립관계가 되죠. 영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도 탕평책을 실시하여 그의 집무실을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칭하고 당쟁으로 희생된 아버지에게 ‘장헌세자’와 ‘장조’라는 시호를 내립니다. 그러나 그 또한 끝내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49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