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하는 동경주 구석구석 오늘은 양남면 숯방마을과 토방마을에 찾아갑니다. 경주시 양남면은 특이하게 신라 4대왕인 석탈해왕과 관련된 유적이 많습니다. 그가 처음 용성국에서 배에 실려 신라 땅에 닿았던 아진포가 지금의 양남면 나아리 해변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탄강유허지는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 공원 한 귀퉁이에 있습니다.신라의 왕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웠던 왕으로 손꼽히는 탈해왕의 흔적은 양남면에 또 있습니다. 상계리의 자연마을인 사왕마을도 탈해왕과 연관이 있습니다. 서왕마을은 신라 때 석씨 성을 가진 왕의 능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옛날에는 석왕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을 이름에 왕의 성씨를 함부로 쓰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해서 ‘석’자의 ‘ㄱ’을 떼버리고 서왕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서왕마을에서 신대리로 넘어가는 골짜기 길은 ‘서왕길’이라고 부릅니다. 탈해왕의 흔적을 더듬어 갈 수 있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서왕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닿는 곳은 숯방마을입니다. 경주시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길이어서 마을사람이 아니고는 하루종일 사람의 왕래를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이 길의 끝에 형성된 숯방마을은 탈해왕이 남긴 설화 중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장이기도 합니다.아진포에서 자라난 탈해왕은 성안에 자신이 머물 집을 고르기 위해 서라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토함산에 올랐습니다. 노비 둘을 데리고 토함산에 오른 탈해는 그곳에서 돌무덤을 쌓고 7일을 머물렀습니다. 서라벌의 구석구석을 살피던 탈해의 시선은 한곳에 머물렀습니다. 마치 초승달과 같은 형상을 한 곳에 근사한 집을 발견한 것입니다.토함산에서 한달음으로 내려와 자신이 눈여겨 봤던 터에 가보니 그곳은 당시 지역의 세력가였던 호공의 집이었습니다. 아무리 맘에 들어도 지방 토호였던 호공에게 그 집을 뺏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탈해는 한 가지 꾀를 냈습니다. 호공의 집 주변에 숫돌과 숯을 몰래 묻은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호공을 찾아간 탈해는 “이곳은 우리 선조의 집이니 지금 비껴달라”고 요구했습니다.새파랗게 젊은 탈해의 느닷없는 요구에 호공은 기가 막혔습니다. “무슨 소리 하느냐. 이 집은 대대로 우리 집안이 살았던 곳이다”고 말하며 다툼이 일었습니다. 결국 해결이 나지 않아 관아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관리는 탈해에게 “무엇으로 네 집임을 증명하겠느냐”고 물었더니 탈해는 “우리 집이 본래 대장간을 했는데, 잠시 다른 지방에 가 있는 사이 남이 들어와 산 것이니 땅을 파서 조사해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리가 호공의 집 주면을 파보니 숫돌과 숯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탈해는 이 집을 차지해 살게 됐습니다.이 설화는 탈해왕이 신라에서 본격적으로 철기문화를 꽃피운 왕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남해왕은 탈해가 매우 지혜롭다고 여겨 자신의 큰 공주인 아니부인과 짝을 맺어줍니다. 이 지점은 바로 신라를 건국한 박씨 집단과 용성국에서 유입된 석씨집단이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됩니다.신대리 숯방마을은 상계리 서왕마을에서 상계저수지를 지나 약 5㎞ 정도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야 나옵니다. 이 마을은 신라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군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진지로 병사들이 주둔했던 곳이었습니다. 군사들의 취사를 위해 숯을 많이 생산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산된 양질의 숯으로 울산 달천리에서 생산되는 주철을 녹여 철기를 생산하는 쇠부리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제철소인 셈입니다.숯방마을과 함께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마을은 토방마을입니다. 숯방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1㎞ 정도 넘어가면 토방마을이 나옵니다. 자동차로 가기 위해서는 숯방마을에 닿기 전에 나오는 상계저수지에서 오른쪽 산길을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토방마을은 신라 때부터 이 마을에 양질의 흙이 흙이 많이 나온다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토방마을에서 생산된 질 좋은 흙은 숯방마을의 쇠부리에 많이 이용됐다고 전합니다.숯방마을과 토방마을은 군사용 철기 무기를 생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던 마을임이 분명합니다. 지금은 경주시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고 마을 이름도 생소한 곳으로 묻혔지만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 가운데 우리가 다시 찾아 관심을 기울이고 보존해야 할 마을입니다.숯방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약 12㎞ 정도 산길을 달려야 하며 시간으로는 30여분이 걸립니다. 토방마을로 가려면 숯방에서 다시 상계저수지까지 내려와 갈림길 산길을 되짚어 올라가야 합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