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와 닿는 햇살이 유난히 따갑다. 서늘한 봄바람은 어느 사이 자취를 감췄다. 오후면 후텁지근한 기류가 살갗을 스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우뚝 서있는 나무들마저도 마치 휘청이며 더위에 허덕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점심 때 쯤 일이다. 더위를 피하여 근처 공원에 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있노라니 갑자기 편안함이 몰려온다. 그동안 여름철엔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 바람에 소름마저 돋는 카페에 들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더위에 지친 몸을 자연에 기대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무 그늘은 차가운 에어컨 바람만큼 더위를 식혀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자연의 바람은 또 다른 신선함과 심지어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이처럼 좋은 피서 법은 없는 듯하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며 바스락 거린다. 이 소리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마저 금세 닦아주는 기분이다. 이 현상을 바라보노라니 마치 꿈을 꾸듯 나무가 드리워주는 시원한 그늘 속으로 나도 모르게 침잠했다.   순간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 ‘세르세’의 ‘Ombra Mai Fu’ <그 어디에도 없을 나무 그늘이여> 라는 아리아가 연상 되었다. 이 작품은 헨델 생애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1738년에 영국 런던에서 이 작품을 초연했을 당시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보통 오페라와는 달리 아리아 부분들이 너무 짧게 작곡되기도 했거니와, 진지함 과 희극적인 내용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초입에 이르러 헨델의 이 작품은 다시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세르세’ 왕은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470년경 고대 페르시아에 실존했었던 왕이다. 그러나 내용은 헨델이 허구적으로 구상한 작품이다.   오페라 1막에서 ‘세르세’ 왕이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다가 나무 그늘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에 감탄하여 부르는 아리아가 바로 ‘Ombra Fu’이다. 보통 이 아리아는 카운터 테너 (고음역의 남성 성악가 ) 가 부른다. 이때 이 아리아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역대의 고음이지만 단아하고 고운 결의 감미로운 음색으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이 아리아를 떠올리노라니, 절로 내 마음이 편안하고 안락하다. 이렇듯 평상심을 되찾을 무렵, 일본의 유명한 카운터 테너 ‘메라요시카즈’ 가 부르는 이 아리아가 그리움처럼 밀려왔다.   메라요시카가 부르는 그 곱디고운 서정적인 색채의 아리아를 들으며 나무가 내어준 그늘에 앉아 잠시 삶을 성찰하는 시간도 가졌다. 지난날 사회적인 지위와 명예, 물질을 취하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고군분투 하는 삶을 살아왔다. 현재도 이 삶의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필자가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인 구조에 얽매인 탓일 게다. 이러한 팍팍한 삶 속에서도 여유를 찾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자연의 품에 안겨 잠시 여유를 되찾고자 하는 갈망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연을 찾으면 그 때 뿐인 것을 실감한다. 결국 현실로 돌아오면 곧 허상을 좇곤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인간은 결코 완전한 자연인이 될 순 없을 터, 자연을 찾되 잠시 여행했다 다시금 되돌아오는 방랑객일 뿐이다.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갈구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늘 노심초사하며 급급해 하지 않았던가. 이 때 마다 풍광 좋은 자연을 떠올리곤 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관념을 갖고 있어서인지 우리를 위무해주는 자연이 마냥 경이롭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렇다. 주인공인 페르시아의 왕 ‘세르세’ 는 항상 사람들에게 추앙 받았다.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움켜쥐었지만 그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외로움과 허전함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세르세 왕도 자연인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자연은 삶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깊은 깨우침을 주기도 한다. 미처 자연의 이 가르침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오로지 삶의 목표만 바라보고 그 길만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며 달려왔잖은가. 이는 세상사에 대해 깊이 있게 바라보고 탐구하는 것을 간과한 탓일 게다.   욕망과 명예 그리고 부의 모든 가치들은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현재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인 도덕과 윤리 소소하지만 지금 내가 쉬고 있는 이 나무 그늘에서 얻는 지극히 편안함과 맞바꿀 생각은 없다. 우리가 갈구하는 모든 욕망은 달콤한 결과 보다 쓰디쓴 고배를 맛보기도 해서이다. 이는 정서적 풍요로움과 안식처를 대가 없이 내어주고 있는 자연이 일깨워준 지혜다. 자연이 베푸는 선물인 나무 그늘 아래서 만끽하는 마음의 평화다. 이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서인가 보다. 절로 아리아 ‘Ombra Mai Fu’의 “그 어디에도 없을 나무 그늘이여”를 나직이 입 속으로 되뇌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나 역시 삶에 지친 누군가가 편히 쉬어가는 나무 그늘이 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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