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풍속에 따라 고유의 3대 명절로 전통적으로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며 즐기는 날인 설날•단오•추석이 있다.   특히 단오절은 민속에서 음력 5월 5일 (금년은 양력 6월 22일)로 단양, 중오절, 천중절, 오월절, 수릿날이라한다. 고래로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날이었으나, 현재는 주로 농촌의 명절로서 수리취를 넣어 둥글게 절편을 하여 먹고, 여성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기도 하여 그네(추천)를 뛰고, 남성은 씨름을 하고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민간 행사로서는, 단오떡(수리취떡)을 만들고, 민속에 따라 단오절에 액운을 물리친다하여 문이나 기둥에 부적을 붙이곤 했다.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단오절에 신하들에게 부채(단오선)를 나누어 주던 관습도 있었다고 한다. 단오절이라면 전국적인 행사의 대표가 남자 씨름이다. 씨름의 인기는 경북에는 경주, 경남은 진주, 그밖에 고을마다 씨름 경기가 며칠씩 열리고 최고상은 황소 한마리다.   씨름의 역사는 원래 원시사회에서 맹수나 타 종족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살 수 있었으므로 생활수단으로서 투기 또는 자기 보호하는 무술로서 행하여져 왔다. 점차 인간의 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기인하여 무예로 발전한 것이다. 음력 보름인 백중에 힘겨루는 씨름으로 천하장사를 뽑았다고 한다. 맞붙은 상대를 당기고, 들고, 밀고, 허리를 돌리고, 다리를 걸고, 감고 되치기하는 운동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벽화에도 씨름의 그림이 있고 중국에서도 씨름운동이 성행했고 상고시대부터 고구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씨름의 기술은 필자가 익힌 것으로 기본자세에서 시작으로 배치기, 앞발채기, 다리 걸기, 덧걸이, 다리와 무릎치기, 엉덩배지기 등이 있어 기예와 기술을 곁들인 무인들의 기묘한 재주이다.   그러한 민속씨름이 인기를 잃을 시대가 되었지만, 한국방송공사(KBS)가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서 전국씨름대회를 중계하는 기회가 있어 그 인기와 묘미의 맛을 되찾는 기회가 된 것이다.씨름은 별다른 무기와 장비도 없이 그리고 선수의 복장도 간단하며 관중이나 시청자 누구나 심판이 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는 경기다. 선수의 복장은 상의는 필요없고 하의만 착용하고 샅바만 매면 그만이다. 인간의 육체적인 힘으로 겨룬다는 점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널리 퍼져 있는 스포츠다.   한국의 씨름도 레슬링의 일종이다. 2018년 남북한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공동으로 등재한 씨름의 영문 명칭이, ‘코리언 레슬링’인 이치 (근본 뜻)이다. 여러 벽화에 묘사된 한국의 씨름은 서로의 허리춤을 잡고 있는 모습이고, 일본의 스모, 몽골의 씨름처럼 서로 떨어져서 경기를 하는 모습들이 모두 보인다. 이런 유래를 가진 한국씨름은 완전한 한국적 민속 경기로 세계인들도 가세하여 배우는 국제적 경기로 진출하고 있는 현실이다. 씨름을 한문으로 각저(각희)라 이름 지어진 유래를 알길이 모호해진 용어가 된 것이다.   경기장 풍경도 이채롭다고 한다. 국문학자 이병기의 ‘경주의 달밤’이란 글에서 “순 경주 사투리를 써가며 함부로 떠드는 소리는 귀에 설기는 하지만 토속 연구의 자료로는 이 밖에 다시 없을 것 같다” 는 말을 남겼다.   김소월, “씨름은 경기의 일종이요, 씨름하는 데도 예절과 도의가 반듯하고 절도 있는 건전한 스포츠”라 인정했다. 경주의 씨름 역사는 유구하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신라문화재 행사와 명절 때마다 열리는 고성숲(지금 황성공원 씨름장)에서 새벽까지 벌렸던 씨름장의 추억은 칠순이지난 노년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낭만이었다. 그 낭만은 행복이었고, 행복은 과거에 있었던 그리움의 그림자이며, 지난 생활을 즐기는 것은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단오절이 가까워 오고 있다. 추억을 묻어두기에는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황성공원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책하고, 과거가 남기고 간 숱한 애환으로 한나절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그곳엔 민속축제가 열렸던 씨름장이 영구히 공원을 지키고 있다. 씨름은 우리 고유의 무예요, 가장 한국적인 스포스라 세계인들이 극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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