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일입니다. 함께 살던 반려견이 자기 나이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떴습니다. 두어 달 된 강아지로 우리에게 와서 우리 아이들과 같이 자라며 십오 년을 동기간처럼 지내다 먼저 보내게 되었으니 이젠 다 지린 아이들도 이별을 참 아파했습니다. 그건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던 내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을 만큼, 생명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이별이 주는 상실감에 아이들도, 나도 오래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죽은 개를 묻으며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지금 나는 또 개를 데리고 아침 저녁 산책에 나섭니다. 작년에 몇 군데에서 파양당한 푸들잡종 한 마리를 어찌어찌하여 내가 떠맡게 되었습니다. 거부당하던 마음의 상처가 깊은지 녀석은 처음 얼마 동안은 곁을 내 주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앉거나 멀찍이 떨어져서 자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눈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더군요. 그러구러 시간이 가면서 언젠가부터 내 무릎 위에 올라와 앉고, 자다가 깨보면 침대 발치에 조그만 털뭉치가 자고 있더군요.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 생각납니다. 인류학자이며 작가인 엘리자베스.M.토마스의 ‘세상의 모든 딸들’이란 소설인데요, 2만 년 전 춥고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살아가던 한 선사시대 소녀의 삶을 통해 여성들이 만들어간 여자들의 삶의 역사를 그려낸 장편소설입니다. 주인공 야난은 부모를 잃은 후 어린 동생과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 여성으로서는 도전해보지 못했던 사냥을 시작하며 생존할 능력을 습득합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새끼를 데린 늑대 한 마리가 야난의 움막에 들어오게 되는데, 처음에는 서로 두려워하며 경계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같은 움막에서 늑대와 공존하게 되면서 마침내는 야난과 늑대가 협업하여 사냥에 성공하게 됩니다. 야난이 두려움의 대상이던 야생의 늑대와 친숙해지고 사냥에 도움을 받게 되는 과정을 보며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늑대를 길들이며 만든 관계가 오늘날 개와 사람의 관계로 이어졌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2022년 기준으로 602만 가구나 되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의 25.4%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 중에는 고양이를 양육하는 가구도 포함되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가구에 비해 개를 기르는 가구는 거의 2배나 된다는군요. 한 때 외국인들로부터 ‘개를 먹는 야만적인 식문화를 가진 나라’라고 손가락질 받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듭니다. 해 질 무렵 근처 공원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개들을 앞세우고 산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쁜 옷도 입히고 드물게는 신발까지 신겨서 데리고 나오기도 합니다. 시나브로 애견이라는 말도 삶을 함께 한다는 의미의 반려동물로 말로 바꿔 쓰이고 있습니다.   1인 가구와 핵가족의 증가로 반려동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물 사료, 의료, 미용, 숙박 등과 관련하여 ‘펫코노미(반려동물 사업)’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기르다가 유기된 고양이들 수가 증가하니 그들을 돌보는 ‘캣맘’도 생겨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동네 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젠 개나 고양이는 더 이상 사육하는 짐승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사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자녀들을 다 키워 독립시킨 노인층에게 따라오는 고독감과 그로 인한 우울감에 반려동물이 정신적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반려동물이 늘어나니 자연히 그에 따른 문제도 야기됩니다. 개물림 사고, 짖어서 생기는 소음, 공원 등의 풀숲에 버려진 개의 배설물 등 불쾌한 환경을 만들고, 키우다가 주인의 마음이 변하여 유기당하는 유기견, 길고양이가 늘어나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니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려면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도 함께하는 것임을 당연히 인지하여야 하겠지요.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의 몇몇 국가에서는 애완동물 보유세를 부과하여 반려동물로 인한 사고 방지와 유기견 방지와 구조, 반려동물의 배설물 수거, 반려견으로 인한 공원 시설물 보수 등의 비용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개를 입양하려면 그 개를 책임질 수 있는 몇 가지 능력을 입증해야 한답니다. 개 주인의 경제적 능력뿐만 아니라 돌보고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까지도 고려 대상이 된답니다. 그렇게 하면서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갈 수 있는 장소의 폭을 넓게 허용하여, 식당 같은 곳에서 주인이 식사하는 발치에 얌전히 누워서 기다리는 개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의 경우 반려견을 데리고 여행을 갔다가 묵을 수 있는 숙박지가 없어서 낭패를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유독 그 쪽으로 눈길이 자주 갔습니다.   우리도 최근에 와서 반려동물 등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반려동물을 관리할 확실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적용하는 대신, 반려견을 데리고 갈 수 있는 장소가 좀 더 확대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반려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시해 봅니다. 초복(初伏)이 다가오니 이래저래 개와 관련되는 잡념들이 생겨나서 두서 없이 글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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