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열흘째야, 아무것도 못 먹었어. 날씨는 와 이리 덥고 비도 오지않는 거야? 마 그냥 죽고 싶어져. 숨도 자꾸 헐떡거려하지만 내 맘대로 죽어버릴 수도 없어. 애들이 말렸거든.그것도 여섯이나. 뭐라도 좀 먹어야지 젖이 다시 나올낀데.오늘은 이판사판 꼭 잡아 와야겠어. 그 많던 얼룩말들 대체 어디 다 간 거야. 이러다 내 새끼들을 몽땅 말려 죽이겠어.우와! 다행이야. 버펄로 떼 나타났어. 한 마리는 잡아야 돼. 잡아야 돼. 잡아야 돼. 내 새끼 명이 달렸어. 새끼라도 잡아야 돼. -이종문, '오늘은 이판사판'
 
티비 '동물의 세계'가 연상되는 시다. 아프리카 들판, 동물들의 삶의 처절한 장면이 떠오른다. 약육강식의 세계. 한쪽에서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한쪽에서는 피를 흘리며 먹고 있는 이 끔찍한 우주! 먹고 먹히는 이판사판의 세계. 시속의 화자는 암놈 사자일까? 암놈 호랑이일까? '버팔로'를 잡을 수 있는 동물이다.
"오늘은 이판사판!" 그렇다 날마다 우리는 이판사판, 삶의 벼랑에서 동물들처럼 전투하듯 살고 있다. 승용차를, 지하철을 타고 전쟁 치르듯 출근을 해야, 얼룩말 새끼라도 한 마리 잡아야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릴 수 있다. 이종문 시인은 경상도 사투리를 해학적으로 시에 도입해서 시를 더욱 재밌게 만드는 시인이다. "날씨는 와 이리 덥고" "좀 먹어야지 젖이 다시 나올 낀데""마 그냥 죽고 싶어져"… 요즘처럼 시를 잘 읽지 않는 시절에 시를 읽는 재미라도 있어야 한다.
  시인들은 실험적인 해체시들,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도 좋지만, 난해한 시 말고 독자들의 눈높이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읽히지 않는 시가 무슨 감동을 줄까? 이 시인의 다음 경상도 사투리 시들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시인은 삶의 깊이를 드려다 보고 삶을 통찰하는 사람이다. 낯익은 현실을 노래하지만 삶의 깊이를 드려다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시를 만들어 내는 골격의 탄탄함, 시속에 담긴 철학적인 사유가 돋보인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한 편의 영화 장면 같은, 시 속에 삶의 진실이 보인다. 얼핏, 쉽게 써진 듯한 시 같지만, 시인의 깊은 고뇌가 묻어있는 감동적인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