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綠雨가 쏟아진다. 산하에 우거진 싱그러운 신록 때문인가. 내리는 장맛비마저 푸른 물이 한껏 배인 느낌이다. 하릴없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넋 놓고 바라보노라니 마치 하늘에서 푸른 물을 쏟아 붓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는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집 근처 울창한 숲 탓인가 보다.
하지만 아무리 날씨가 가물어도 장맛비는 왠지 봄비만큼 달갑지만은 않다. 만물을 생성 시키는 기운을 띤 봄철이어서 인가보다. 왠지 자박자박 내리는 봄비가 더없이 좋다. 이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배미를 바라보는 타들어가는 농부 마음을 외면해서가 아니다. 장마철 폭우는 자칫 재산과 인명을 위협해서다. 또 있다. 장마철에는 아무리 예쁜 옷과 헤어스타일을 지니려고 애써도 비는 심술 맞게 이 꿈을 형편없이 망가뜨린다.
 
눅눅한 습기, 그리고 온천지가 회색빛이어서 웬만해선 멋진 옷도 구두도, 헤어스타일도 본연의 때깔을 잃기 마련이라면 지나치려나. 어제는 오랜 가뭄 끝에 모처럼 비가 내린다 하여 우산을 쓰고 외출을 했다. 우산을 썼으나 잠깐 사이에 강하게 몰아친 빗물에 새로 산 구두가 흠뻑 젖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후 밖에 비도 내리고 딱히 할 일도 없는 오후라서 집에서 빈둥거렸다. 어머닌 부엌에서 날궂이를 한다며 김치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때 안방 서랍이 제대로 안 닫혀 속 내용물인 옷가지들이 밖으로 삐죽이 삐져나온 게 보였다. 그 서랍을 닫노라니 십 수 년 전 내가 입었던 헌옷가지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버리기 아깝다고 보관한 옷들이 전부다. 그 옷가지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길이가 깡총한 원피스, 후줄근한 빛바랜 티셔츠, 청바지, 속옷 등등을 가려내자 옷들이 방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이때 방바닥에 쌓인 헌 옷을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그동안 잔뜩 껴입었던 내 마음의 옷도 이참에 훌훌 벗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뿐만아니라 문득 지난날이 뇌리를 스친다.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온 학창 시절이었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은 더욱 그 마음이 가중됐다. 그 애들은 넉넉한 집안 환경 탓인지 옷 및 장신구가 비싸 보였고 심지어 옷매무새가 매우 세련됐었다. 어디 이뿐이랴. 당시 외제 자동차를 몰고 학교를 등, 하교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혼자서 너른 새 아파트를 전세 얻어 생활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학비 및 하숙비를 알뜰히 쓰려고 허구 헌날 헐렁한 티, 빛바랜 청바지, 운동화 차림이 주류였다. 자취를 할 때는 환경도 열악한 반지하인 가장 싼 집을 구하곤 했었다.
  대학 시절 내내 어둡고 음습한 반지하 자취방에서 지낼 때 일이다. 컵라면을 먹다가 잠깐 한 눈만 팔아도 젓가락 위로 바퀴벌레가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당시 방안 이곳저곳 기어 다니던 바퀴벌레들의 흉물스런 모습은 지금 돌이켜봐도 소름 돋을 만큼 징그럽다. 철부지였었나 보다. 이런 궁색한 형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세련되고 멋스런 옷차림을 한 친구들을 못내 부러워했으니 말이다. ‘언제 나는 저 아이들처럼 화려하고 멋있는 옷차림을 해볼까?’라는 생각에 잠기기 일쑤였다.
 
이런 고생도 잠시, 음대를 졸업 후 그토록 염원하던 오케스트라 오디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는 영광을 얻었다. 당시 타지에서 근무해야 해서 교향악단 연주실이 있는 근처에 집을 구했다. 좁은 원룸에서 10년 가까이 생활을 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기쁨에 고생인 줄도 몰랐다. 어느 날 이런 고충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털어놨다. 그러자 그 친구는 오히려 내가 부럽단다. 또한 장하다고까지 치켜세웠다.
“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음악 공부하여 지방에서 명문대학이라 할 음악 대학도 전국에서 한 명 뽑는데 수석으로 합격했잖니. 또한 그 많은 단원 중에 가장 빛나는 수석 연주자 자리까지 올랐잖니? 네가 명품이고 네 자신이 명 악기란다.” 라는 친구의 진심 어린 이 말에 갑자기 얼굴이 뜨거웠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의 존재감을 까맣게 잊은 채 헛된 욕심의 옷들만 켜켜이 심신에 걸친듯해서다.
 
이로 보아 어쩌면 삶을 살며 가장 부끄러워할 옷은 헛된 욕심으로 얼룩진 마음의 옷일지도 모른다. 즉 과욕이 그것이다. 무슨 일이든 지나친 욕심은 불행을 자초한다는 글을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때 삶을 살며 분수에 맞지 않는 일들은 탐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럼에도 때론 미처 나의 능력에 미치지도 않는 일을 갈망하곤 한다. 이제라도 지금 이 헌옷들을 서랍장에서 골라 버리듯이, 그동안 내 마음에 겹겹이 걸친 수많은 허욕의 옷들도 과감히 벗어 버릴까 한다.
  이런 생각에 잠길 즈음 천둥 번개를 동반했던 폭우도 그치고 하늘빛도 멀끔해졌다. 헌옷을 아파트 쓰레기장에 내다 버리자, 그동안 욕심으로 점철됐던 마음의 옷도 한 꺼풀씩 전부 벗은 듯하여 심신이 참으로 홀가분하다. 비로소 진정한 마음의 나신裸身이 된 기분이다. ※이 칼럼은 이민재 비올리스트가 월간문예지 ‘수필과 비평’ 7월호에 수필가로 등단한 작품을 전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