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석에서 대뜸 지인이 물어온다. “ 문학이 밥 먹여 주는 일도 아닌데 왜? 치열하게 글 쓰세요?” 라는 질문에 선뜻 답 해 줄 말을 잃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사실 문학으로 돈 버는 문인들은 극히 드물어서다. 그럼에도 눈만 뜨면, 습관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지인의 이 말에 어디선가 읽은 인문학에 대한 글이 문득 떠올랐다. 서울 명문대 국문과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해서 더욱 호기심이 발동 됐던 내용이다. 30년 가까이 똑 같은 내용만 강의 하는 어느 노교수 강의 노트는 그야말로 해져서 너덜너덜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제자인 조교가 닳고 닳은 노교수 강의 노트를 타이핑해 정리하다말고 이런 말로 의견을 제시했다. “교수님. 이참에 내용도 한번 새로 정리해 보시죠?” 라고 말하자 노교수는 제자를 한심한 듯 바라보며, “이 녀석아. 진리가 변하냐?”라는 말로 되받았다고 한다.
  필자 학창 시절만 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데 칸 쇼’라는 말이 유행 했다. 근대 유럽을 만든 철학자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함축해 이르는 말이 ‘데 칸 쇼’다. 전공불문하고 ‘데 칸 쇼’ 쯤은 제대로 알아야 대학생이랍시고 행세 할 수 있었다면 자아도취이려나. 이 무렵엔 무작정 ‘데 칸 쇼’와 대면해 보겠다는 학생들의 철학에 대한 뜨거운 열기로 이들 저서가 서점가에선 날개를 달은 적도 있다.
  필자 역시 ‘데 칸 쇼’를 책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볼 요량에서였나 보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등 철학 서적에 얼마동안 심취하기도 했었다. 또한 한 때는 대학에서 문과는 인문대, 이과는 자연대가 대학을 떠받치는 튼튼한 두 기둥으로 작용했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문대에는 문학· 역사학 ·철학 (文· 史· 哲), 자연대엔 수학· 물리학 ·화학이 시누 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이는 인문학에서 그 가지가 뻗어나간 수많은 학문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요즘도 이런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그 당시엔 대학에서 교직원 수첩에 인문대 교수들이 맨 앞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명문대인 하버드나 예일대학 같은 경우는 법학 ·의학· 경영학 전공을 대학원 과정에 두며 전문 지식 및 기술 역시 학부에서 인문 교양을 충분히 익히는 것을 학생들이 밟아야 할 당연한 수순手順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현대는 대학에서 학문조차 생존과 직결된 전공분야가 인기란다. 문과보다 이과 졸업자들에게 취업의 문도 넓은 편이란다. 이즈막엔 의대가 학생들 간에 인기란 말도 있다.
 
지성인의 상아탑이라고 일컬을 대학에서조차 일명 ‘밥벌이’에 적합한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것에 대하여 무어라 말 할 순 없다. 요즘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 취업문이 좁기 때문이다. 이런 형국이니 날로 치열해지는 생존경쟁 대열에 합류하려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대학에서 양성 하는 게 맞는 이치다. 그러나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 대통령 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거겐의, “시나 소설 같은 문학 강의를 꼭 들어라.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건강한 정신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 준다.” 라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각인되는 것은 어인일일까.
 
언젠가 국내 대학들이 학기에 수강생이 없는 강좌들을 없앴다는 소식을 신문 지상을 통하여 읽었다. 폐강의 비운을 맞은 것은 대부분 문· 사· 철(文· 史· 哲)인문학 강좌들이란다. 즉, ‘문화의 철학적 이해’, ‘유럽 문명사’등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는 사회라면 우리가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인생 방향을 모르겠다. 이런 세태에 인간학人間學이라고 일컫는 수필문학을 30여 년 가까이 창작하며 필자가 깨달은 것은 단 한마디로 매사를 ‘사람답게 살자’의 덕목이다.
그동안 비록 문학으로 돈벌이는 못했다. 하지만 문학을 하며 우매함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는 지혜와 사물이 지닌 가치와 그 이면을 꿰뚫는 혜안을 터득했다. 아울러 그야말로 진정한 ‘인간미’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달았다면 문학을 어찌 속인俗人의 밥벌이에 그 심오함을 비견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