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언론을 장악해서도 안 되겠지만, 언론을 방관하는 것도 큰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보기에,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언론이 아닌 언론과 언론 비슷한 언론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는 게 나의 관점인데, 물론 동의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터이다. 언론의 원조는 바로 신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신문의 역사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변에서 일어난 ‘메소포타미아’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근대 신문의 역사는 아무래도 15세기경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생각이었던 간에 초기 신문은, 그간 구전(口傳)으로만 전달되던 뉴스(소문)를 문자화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정보 혁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 같고 또 지극히 공익적인 목적이었다 해야 할 것이지만, 17세기경에 이르러 신문에 광고가 등장하면서 상업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자, 신문사는 거대한 자본을 가지지 않으면 아무나 운영하기 어려운 공룡기업처럼 성장함과 동시에 막강한 사회적 권력까지 가진 하나의 기관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언론의 역사이다.그 후 신문의 뒤를 이은 라디오나 TV같은 전파 매체가 등장하면서 인쇄 매체 언론들의 입지가 점점 축소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20세기 말까지는 여전히 인쇄 매체인 신문이 맹위를 떨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불과 이 삼 십년 전 까지만 해도, 신문에 난 뉴스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신문에 났더라 하면 그것은 곧 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언론이 무서운 힘을 가졌던 것도 사실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언론이 권력과 결탁하고, 자본이 언론을 장악하면서 언론은 뉴스를 알려주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의 어용 나팔이거나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있으니, 이제 그 누가 언론을 신뢰할 것인가?   그 때 그 시절, 뿌지직대는 잡음 속에 들려오는 뉴스를 듣기 위해, 나무통으로 만든 진공관 라디오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음질 좋은 FM 라디오로도 들을 것이 없으며, 사람 피부의 땀구멍까지 보이는 고화질 TV로도 볼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제 라디오나 TV 보다는 손안에 든 컴퓨터인 스마트폰으로 SNS나 유투브를 더 많이 보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도 식상하기만 하니, 하드웨어적 미디어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지만, 소프트웨어적 콘텐츠의 질이 상대적으로 너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명색이 공영 매체인 언론이 특정한 개인의 SNS 시청률보다 못한 경우까지 있으니, 지금 언론들이 처한 입장은 마치 군중 없는 광장에서 나 홀로 열심인 버스킹을 연상케 한다.   음악다운 음악을 하면 군중은 몰려들 것이며, 뉴스다운 뉴스라면 어느 누가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인가? 양 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자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장난인줄 안 사람들은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뛰쳐나오려 하지 않는다. 지금의 기성 언론인들이 좀 곱씹어 봐야 할 얘기가 아닐까? 정보의 소비자인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언론이 앵벌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한계를 가진다. 정보 역시 상품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상품만 생산한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까? 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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