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한 ‘투모로우(Tomorrow)’란 영화가 있습니다. 독일 출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인데요 원래 제목은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투모로우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지요.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린 극지방의 빙하로 바닷물의 온도가 급강하하니 엄청난 토네이도, 탁구공 크기의 우박, 몇 미터씩 쌓이는 눈 등 재앙과 같은 이상 기후가 닥치고 북반구는 얼음으로 뒤덮여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됩니다.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모레’나 ‘내일’이나 시간적으로 미래인 점이 크게 다를 바 없고 언젠가 저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먼 미래에나 일어날 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이 아니라 ‘내일 다음의 어느 날’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화면으로 구현시켜 보인다고 생각했지요.
  왜 20년도 더 지난 영화를 새삼 기억에서 불러내느냐고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의 장마가 지금껏 겪어 본 어떤 장마와도 다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내가 겪어 온 우리나라의 장마는 더운 날씨에 습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이며 불쾌하다가도 세차게 장맛비가 쏟아지면 사람에게는 무더위에 지친 몸을 씻어 달래고 저수지를, 댐을 넘치도록 채우고, 목마른 논밭을 윤택하게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고산(孤山) 윤선도의 시조 속 장마처럼 여유롭고 넉넉하며 낭만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비 오는 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마히 매양이랴 잠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맣’는 장마의 옛말입니다. 여기에 길다는 한자어 ‘댱(長)’이 결합하여 ‘댱맣’로 쓰이다가 후대로 오면서 ‘장마’가 됩니다. ‘잠기’는 쟁기를 가리킵니다. 긴 장마를 초조하게 보내기보다 여름 농사에 지친 몸을 농기구도 손보며 잠시 쉬어가자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면서 장마철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지역도 지난해는 장마철 내내 비 내리는 날보다 구름이 지다가 해가 들기를 반복하는 날이 많은 마른 장마가 들었었지요. 
 
그러다 보니 장마가 끝나도 말랐던 저수지가 잠길 충분한 수량은 채워지지 못하고 가뭄 걱정도 벗어나지 못하게 했지요. 그에 비해서 올해의 장마는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의 엄청난 폭우를 쏟아 부어 많은 인명 손실과 재산 피해를 부르는 등, 풍한서습(風寒暑濕)이 조화롭던 우리나라의 날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엘니뇨 현상이 잦아지며 기상 이변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의식주의 생활환경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기도 하였지만 어릴 적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달라붙던 겨울 추위가 이젠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무논이며 개울에서 얼음을 지치거나 썰매를 타던 내 어린 시절의 재미를 지금 아이들은 누리지 못할 정도로 겨울에 얼음이 잘 얼지 않습니다. 두레박에 수박을 달아 우물에 넣어 식혀 먹고 엄마의 부채 바람에 잠이 들던 여름도 옛말로 들릴 정도로 여름이 더워졌습니다.
  세계적 기상 이변도 해마다 반복됩니다. 지난 해 거대한 산불과 연일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많은 사상자와 재산 피해가 발생한 남부 유럽은 올해도 40도가 넘는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고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 5월부터 캐나다에서는 건조한 대기가 열돔이 되어 나라 전역에 통제 불능의 산불이 동시 다발로 번지며 몇 달 동안 우리나라 면적의 40%나 되는 삼림을 불태웠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일본, 우리나라 등 아시아 지역에서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커다란 재해를 일으킵니다. 우리나라의 이번 장마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지만 ‘극한 호우’란 신조어를 만들어 가며 벌써 100명에 가까운 인명 피해와 농작물과 가축, 주택 매몰 등 큰 재산상 피해도 발생시켰습니다. 자연이 무서울 정도입니다. 과학자나 기상학자들은 이런 모든 이상 기후 현상을 인간이 초래한 인과응보라고 봅니다.
  며칠 전 나는 세찬 빗줄기가 내리는 동대구역 광장에서 커다란 ‘지구 환경 시계’가 가리키는 인류 위기까지 남은 시각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시계는 현재 시간을 알려 주지만 환경 시계는 인류 생존의 위기 시간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이 시계로 12시가 되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이 되며, 이 시각에 가까워질수록 인류 생존 위험은 높아집니다. 시간이 순차적으로 흐르는 보통 시계와 달리 지구 시계에 표시되는 시각은 환경 오염 정도에 따라 운명적인 12시까지 남은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2021년 우리나라의 환경 시계는 9시38분, 2022년에는 9시 28분으로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같은 해 세계 환경 시각은 9시 35분입니다. 잦은 산불과 폭염으로 고통 받는 북아메리카는 10시 17분, 가장 시간이 늦은 아프리카는 9시 1분을 가리킨다 합니다.
  지구 환경 시계 이론은 인류의 앞날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운명의 시각이 당겨지거나 늦춰지거나를 결정하는 것은 지구에 몸붙여 사는 우리 자신의 생활 양식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자신이 ‘거대한 시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늦어도 늦은 게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빠른 때다’와 같은 역설적 표현은 우리에게 지구를 위한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기를 촉구하는 경고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