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파렴치한'의 사전적 의미는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운 인간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나쁜 용어다. 김은경은 문재인 정부에서 2020년 금융감독원 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월까지 11개월간 근무했고, 그동안 그의 연봉은 3억 원에 제네시스급 관용차및 운전기사까지 제공되는 예우를 받고 윤석열 정부의 금감원 부원장 임기를 다 채운 뒤 지난 6월 15일 민주당의 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지금 활동 중에 있다.   그는 2006년부터 한국외대 법학 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바 있는 법학도이다. 법학도라는 의미에는 그 누구보다 항상 청렴하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극히 상식적인 일이고 그래서 사회 도처에서 법을 다루고 법률에 기초한 사법, 행정, 입법부에 직함은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사법부 최고의 수장인 대법원의 김명수 원장은 지난 재임 중 자신의 한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들통이 나면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사법부의 권위에 먹칠한 거짓말쟁이 김명수라는 오점의 딱지를 붙이고 다음 달 9월에 퇴임하게 되고, 지난날 서슬이 퍼렇든 박영수 특검은 자신의 50억 클럽 대장동 비리 등의 혐의로 지난주 구속이 되었고, 그뿐이랴 권순일 대법관도 역시 대장동과 관련된 이런저런 비리에 연루되어 지금 조사중에 있는데 이 사람 역시 구속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국내 법조계의 일관된 시각이다.   이번 노인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파렴치한'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은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는 정신 나간 궤변을 넘어 왜곡된 병적 인식에 볼모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세계 무역 대국이다.   36년간의 암울했던 조선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이 된 이후 공산주의자 모택동과 스탈린, 그리고 김일성의 야합으로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을 당해 소름이 끼치는 공산국가로 전락할뻔했던 풍전등화 앞의 대한민국, 그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누구의 희생으로 지켜내어 오늘날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기적을 이루었는가? 그분들이 김은경이 폄하한 오늘날 노인들이 아닌가? 인간이 가장 인간적일려면 어떤 경우에도 이익과 환대와 명예에도 자신의 양심은 팔지 말아야 한다. 특히 법학도는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양심을 판다는 것은 인간 삶의 가치를 매도한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필자는 정의(定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우리 사회에서는 김은경과 김명수 같은 그리고 권순일과 박영수같이 대한민국 상류사회인으로 국가와 사회로부터 온갖 물질의 풍요와 명예와 환대를 모두 받으며 살아왔음에도 과학, 종교, 철학의 세계가 부정하지 않는 인과의 진리를 탐욕에 불모가 되어 그것을 외면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최고위직 금융감독 부위원장직을 11개월간 수행한 사람이 ‘대통령’ 호칭을 쓰지 않고 ‘윤석열’이라고 부르면서 “윤석열 밑에서 통치받는 게 창피했다.”라는 오만방자한 그의 말은 어떤 경우에도 궤변이고 이중인격의 극치이고 참으로 보기 드문 '파렴치한'이다.   민주당의 위기다. 왜냐하면 민주당을 혁신하려고 구성된 혁신위의 대표가 대다수 국민과 사회원로들로부터 김은경 자신이 혁신 대상(對象)자라는 사실을 한목소리로 성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孟子曰 “하늘의 재앙은 피할 수 있어도 자신이 지은 업보는 피할 길이 없다.”라는 ‘공손추(公孫丑)’ 편의 구절이 또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제 대한민국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답게 언어학에 대한 좀 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인(老人)이란 늙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는 중국식 표현으로 매우 추상적이고,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깔린 저급한 표현이다. 몇 살부터가 노인(老人)이라고 누가 정의(定義)를 하는가?   굳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분류할 때는 청년층, 장년층, 노인층쯤으로 호칭을 하면 되고, 나이가 들었다고 노인(老人)즉 늙은 사람이라는 말은 잘못된 언어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여과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노인(老人)이라는 용어는 원로(元老), 또는 사회원로(社會元老)라는 용어로 반듯이 바꾸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대한 노인회’는 ‘한국 원로회’로 각 지역의 노인정이란 간판은‘어르신들의 쉼터’라는 명칭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참에 참고로 “나이는 관념(觀念)의 숫자일 뿐이다.”라고 했던 독일 출신 미국의 교육학자 사무엘 울만(1840-1924)은 1920년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지은 시를 소개하고 자 한다.   그는 ‘청춘’이란 시에서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20대 30대 청년보다 70이 넘는 노장에게 청춘이 더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라고… 이 시를 특별히 좋아했던 맥아더 장군(1880-1964)은 71세 때 성공률 5,00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던 눈물겨운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여 성공시킨 5성 장군이었다. 그래서 그의 집무실 오른쪽과 왼쪽에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의 초상화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은 자신의 52년간 파란만장했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1951년 4월 19일 미국의 상·하 의회 은퇴 연설에서 그 유명한 미국 국가(國歌)의 후렴구인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가사를 인용한 바 있다. 나이가 청춘이든 70이 넘는 노장이든 자신의 마음(意識)이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도 있지 않고, 오직 이 순간 어떠한 인식의 상태에 있느냐가 자신의 미래인생 방향에 가늠자가 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