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슘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들은 ‘뼈’를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인체에는 칼슘의 99%가 뼈를 형성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신체의 체자가 뼈(骨)가 풍부(豊)하다는 뜻인 것을 보면 한자를 만든 학자는 의학자를 겸했으리라! 이 중요한 뼈의 원료가 칼슘이기 때문에, 칼슘이 부족하면 뼈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뼈에 칼슘이 99%가 있다 했으니 나머지 1%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들의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면서 시작한다. 정자가 난자를 향하여 헤엄칠 때 정자 꼬리의 방향타는 칼슘이다. 칼슘이 없으면, 난자가 있는 곳의 방향으로 갈 수가 없다. 따라서 난자와 정자는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임의 한 원인이 칼슘결핍이다. 여기서 칼슘은 생명의 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생명의 탄생은 일단 장자와 난자의 만난 것이다. 이때 정자는 난자에게 칼슘(Ca)을 선물한다. 정자로부터 선물 받은 난자는, 그 칼슘으로 자신(난자)의 주위에 막(껍질)을 만들어,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그 후 칼슘과 아연 등의 힘을 빌려 세포 분열을 계속, 한 사람의 인간을 만들어낸다.   우리들도 이렇게 탄생했다. 그러나 칼슘이 필요한 것은 생명의 탄생에 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정 후에 있어서 칼슘이 보다 더 중요하다. 칼슘은 골격을 만들고, 세포를 증식시키고, 면역력을 높이는 등, 태아의 성장을 촉진하는 영양소로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 모체는 태아에 칼슘을 공급하기 때문에 칼슘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따라서 모체에 칼슘 보급은 아주 중요하다.   아기가 태어나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칼슘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기간에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성장이 저해된다. 현대에 와서 고령자는 물론, 젊은 여성들조차 골다공증으로 대표되는 뼈의 장해가 심각한 수준에 와 있음을 본다. 이것은 생명의 탄생⟶생명유지활동⟶죽음이라는 라이프-사이클에 있어서 일관되게 칼슘이 필요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칼슘에 의해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10,000:1이라는 비율이 있다. 필자가 이 대목을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이 비율을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알릴 것인가? 우리 신체의 세포는 모두 60조 개나 된다. 이 세포들은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혈액이 갖다 주는 영양과 산소를 이용하여 살고 있다. 여러 가지 영양성분 중에 특히 칼슘(Ca)을 콕 집어서 설명한다. 세포 밖이란 혈관이며, 세포내란 말 그대로 세포 안이다. 즉 세포 밖에 있는 칼슘과 세포 안에 있는 칼슘의 비율을 말한다. 세포 밖에 있는 칼슘의 양이 10,000이고, 세포 안의 칼슘의 양은 1이라는 뜻이다. 칼슘 대사란 칼슘이 세포막을 통해 세포 밖에서 세포 안으로, 또는 반대로 세포 안에서 세포 밖으로 출입하는 것을 말한다. 밖의 10,000이나 되는 칼슘중 농도 구배(句配)에 의해 1000이라는 칼슘이 순식간에 세포 안으로 들어갔다면, 즉시 세포 밖으로 1000의 칼슘이 나와야 하는 것이 대사(代謝)의 법칙이다.   그런데 1000의 칼슘이 세포막에 있는 칼슘 채널을 통해 칼슘이 거의 없는 (1밖에 없는)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기는 쉽지만, 세포 안에서 세포 밖으로 나올 때는 세포밖에 칼슘이 꽉 차 있으므로 쉽게 나올 수가 없다. 따라서 능동수송(能動輸送)이라는 방법으로 즉 모타(에너지=ATP)를 사용하여 세포 안의 칼슘을 세포 밖으로 퍼내는 것이다. 우리가 잠잘 때도 이 작용은 이루어진다. 이때 사용한 에너지가 기초대사량이다. 이렇게 하여 세포 밖과 세포 안의 칼슘의 비율이 10,000:1이라는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것이다. 칼슘이 심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세계적인 칼슘 학자,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후지타 타쿠오 박사는, 사람에게 모든 질병의 원인이 10,000대 1이라는 칼슘의 항상성이 붕괴되어 일어난다고 주장하면서 칼슘 패러독스(Ca-Paradox) 현상을 방어하려면, 칼슘의 섭취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필자가 생전에 만나 뵙고 싶어 했지만, 만나 뵙지 못하고, 작년(2022년) 11월 8일 자로 영면(永眠) 하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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