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것은 재산이나 수입이 적어서 생활하기에 어렵고 딱한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의 뜻은, 하고 많은 가난한 사람을 다 구제(도와줌) 한다는 것은 나라의 힘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개인의 힘으로 되겠느냐는 말이다. 가난은 빈곤을 뜻하는데, 빈곤은 가난 때문에 겪는 고생이다. 이러한 고생에서 벗어나는 길은 열심과 절약이 약이라 한다. 게으르고 느린 것은 나태이고, 게으름은 일하기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다. 근면은 아주 부지런한 것이고, 절약은 아끼어 쓰는 것이다. 지혜문학이라 불리우는 시가서 ‘잠언’에, “가난하면 부자의 지배를 받고, 빚지면 빚쟁이의 종이 된다”고 했다. 가난하면 이웃도 싫어한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세네카는, 가난하다는 말은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 했다.가난은 가난하다고만 하여 결코 불명예로 여길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가난의 원인이다. 가난이 나태나 제멋대로의 고집, 어리석음의 결과가 아닌가를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렇게 했을 때야 말로 진실로 수치로 여겨도 괜찮은 일이라 충고한다. 가난은 서로 도우고 협조할 때 물러가고, 금전의 도움만 아니고 많은 이들의 조언을 통해서 해소 방향을 찾아라고 한다. 가난이 한 가정에 살며시 들어오면 거짓된 신속히 우정은 달아난다고 한다. 가난뱅이에게 아첨하는 인간은 없다고 한다. 결코 가난의 죄가 아니다. 괴로움이 없는 가난함은 비참한 부유(재산)보다 낫다고 한다. 가난의 어려움을 면하는 길은 두 가지라 한다. 자기의 재산을 늘리는 것과 자기의 욕심을 줄이는 것으로, 전자는 자기의 힘으로 욕망이 해결되지 않지만, 후자는 욕심을 줄이므로 언제나 그런 마음을 가짐으로 가능한 것이라 한다. 몇 해 전 뉴스에 보도된 기사가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생이 이웃의 도움으로 리어카를 한 대 빌려서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채소 장사를 하면서 고학했지만 수석의 영광을 얻었다는 기사였다. 찾아온 기자에게 가난은 수치가 아니고, 생활에 다소 불편을 여겼을 뿐이라 했다. 그 뉴스를 본 어느 재벌의 독지가의 주선으로 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흐뭇한 소식이 있었다. 명예는 정직한 노력에 있는 것 같다. 가난을 버리는 것으로, 어떤 일을 앞두고 생각함으로써 할 일이 생기고, 그 일에 노력함으로 이루어지며, 만약에 교만한다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열전’에 신라의 탄금가 백결선생은 자비왕 때의 예술인이다. 남산 (경주의 남쪽) 아래에 살았는데 집이 몹시 가난하여 백군데 헝겊으로 궤맨 옷을 입을 정도로 초라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일찍부터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모든 슬픔을 이겨내는 호방가였다. 어느해 세모(연말)가 되자. 이웃집에서 떡방아를 찧으니 그 아내가 방아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남들은 모두 곡식이 있어서 방아를 찧는데, 우리는 곡식이 없으니 어떻게 새해를 맞을까요. 그러자 백결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무룻 죽고 사는 것은 명(목숨)이 있고 세상 부귀는 하늘에 매인 것이오, 오게 되면 막을 수도 없고, 간다 해도 쫓아갈 수도 없는데 그대는 왜 그렇게 슬퍼하오. 내가 그대를 위하여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당신을 위안 시키겠소.” 하고 거문고를 타서 떡방아 소리를 내었는데 세상 사람들이 그 곡조를 전하여 이름을 대악이라 하였다고 한다. 대악은 백결 선생이 방아 찧는 소리로 시늉하여 지은 노래로 삼국시기에 그 사실만 전하고 노래 내용은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은 견디기 힘들고, 가난뱅이는 자존심 조차 금지되는 경우가 생긴다. 빈 자루가 똑바로 서기 어려운 것처럼, 가난한 우둔은 정신의 태만이며 마음의 잠이라 이른다. 천국도 힘쓰는 자가 차지한다고 한다.